논어에 써있는 네 가지의 앎(知) - 생이지지(生而知之),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 곤이불학(困而不學). 타고난 앎, 배워서 얻은 앎, 애써서 얻은 앎, 배울 생각도 없는 삶. 이중 저는 어떤 사람인가. 세 번째 ‘곤이지지’에 양심을 얹었습니다. 삶이 힘들 때 그나마 애쓰고 애써서 얻어지는 앎. ‘애씀’으로 지혜로워 진다면 몇 천번이라도 애쓰고 싶습니다. 책방오픈 후 ‘한시와의 만남 100일’. 옛사람들의 시를 애쓰며 즐겁게 매일 읽습니다. 앎(知)에 즐거움보다 더 큰 동기는 없으니까요. 시인 김사인 역시 ‘시는 사람이 하는 애씀이다.’라고 했네요. 오늘의 시는 <공부>. 봄날의산책 모니카
공부 - 김사인
'다 공부지요'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 섯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만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