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94

2022.7.20 강형철<야트막한 사랑>

by 박모니카

책방에 출근할 때마다 맨 먼저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올라오는 작물들과 눈 맞춤을 합니다. 저절로 저의 무릎이 굽어지고 저의 눈이 낮아지지요. 심어놓은 옥수수 알에서 올라온 옥수수대, 고추대에 매달린 고추, 가지, 잎채소 들에게 밤새 안녕을 묻습니다. “너는 어떠냐. 나는 밤새 잘 지냈는데.”라고요. 담벼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에게는 특별히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사랑을 느낍니다. 부족한 저도 이런 사랑을 느끼는데, 하물며 시를 쓰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시를 보면 풍경이 보이고 시인이 보이고 그의 마음이 보여요. 시인과 한마음이 되어 결국 나의 시가 되는 시가 있지요. 강형철시인의 <야트막한 사랑>도 바로 그런 시가 아닌가 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야트막한 사랑 –강형철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언덕 위의 사랑 아니라

태산준령 고매한 사랑 아니라

갸우듬한 어깨 서로의 키를 재며

경계도 없이 이웃하며 사는 사람들

웃음으로 넉넉한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매섭게 몰아치는 눈보라의 사랑 아니라

개운하게 쏟아지는 장대비 사랑 아니라

야트막한 산등성이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

온 마음을 휘감되 아무것도 휘감은 적 없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이제 마를대로 마른 뼈

그 옆에 갸우뚱 고개를 들고 선 참나리

꿀 좀 핥을까 기웃대는 일벌

한오큼 얻은 꿀로 얼굴 한번 훔치고

하늘로 날아가는


사랑 하나 갖고 싶었네

가슴이 뛸 만큼 다 뛰어서

짱뚱어 한 마리 등허리도 넘기 힘들어

개펄로 에돌아

서해 긴 포구를 잦아드는 밀물

마침내 한 바다를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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