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97

2022.7.23 안도현<그릇>

by 박모니카

지인들과 시 나눔 모임이 있지요. 아침편지를 보내는 제가 갈수록 젋어진다 하더군요. 왠지 저도 인정하고 싶었죠. 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담은 몸을 수신(修身)할 수밖에 없어요. 거짓으로, 포장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어젠 우연히 ‘연금술사(鍊金術師)’라는 말을 두 번이나 들었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 The Alchemist는 꿈을 믿고 실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한 양치기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진정한 자아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이죠. 아침편지 역시 시대와 인물을 넘나드는 다양한 시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정련하고픈 저의 꿈이 있는지 몰라요. 오늘은 안도현시인의 <그릇>. 봄날의산책 모니카.


그릇 – 안도현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나포십자들녘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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