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99

2022.7 25 오세영<너 없음으로>

by 박모니카

말랭이 마을 어른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제가 정한 주제는 ‘사람과 꽃’입니다. 그들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꽃으로, 어떤 시로 표현하면 좋을까를 고민하지요. 그러려면 자세히 봐야하는 소위 관물(觀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권호문(1532-1587)의 <관물당기>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이치로 보는 것만 못하다.’


사물(사람의 모습)의 이치를 바로 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관물(觀物)사다리 하나를 만들었지요. 첫 계단에 ‘눈’을 두어 오래보고, 다음 계단에 ‘마음’을 두어 깊이보고, 마지막 계단에 ‘이치’를 두어 한 몸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다리예요. 그렇게라도 해야 겉모습만 보는 단순한 견물(見物)에서 비켜나 말로 다 못할 어른들의 장구한 희노애락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늘 하루, 당신앞에 있는 ‘사물과 설레는 만남’을 위해 눈과 마음을 열어볼까요. 오늘의 시는 오세영시인의 <너 없음으로>. 봄날의 산책 모니카.


너 없음으로 – 오세영


너 없음으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너로 하여 이 세상 차오르듯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승의 강변은 바람이 많고

풀꽃은 어우러져 피었더라만

흐르는 것 어이 바람과 꽃뿐이랴


흘러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음으로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책방앞 먹구름,말랭이를 덮는 신묘한 이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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