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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편지115

2022.8.10 김남영<빈 길>

by 박모니카

십여년 전 다문화(필리핀)여성들에게 영어교육법을 지도하는 프로그램을 맡은 적이 있지요. 그들은 영어 말하기는 능숙했지만 학생에게 영어를 지도하는 방법은 부족했어요. 그때 만난 임교수님과 인연이 되었는데, 그분은 저를 정호승 시인의 ‘봄길’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말씀이 좋아서 그 후로 제 소개를 할 때 ‘봄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지요. 며칠 전 봄길보다 진짜 길다운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났네요. 그 분이 쓴 ‘빈 길’이란 글을 읽으며, 지금 걸어가고 있는 저의 길을 되돌아보아요. 반듯한 길만을 향하여, 그 위를 가득 채우고 싶은 맘에 얼마나 많은 허당을 부렸던지 부끄러워요. ‘빔(empty)의 철학’을 말한이도 있지만 최소 ‘길 이란게 비어있어야 진짜 길’임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김남영님의 <빈 길>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빈 길 - 김남영


그래

길 이란게

비어 있어야지

꽉 찬 길도 길이더냐

걸음걸음 걸어서 닿고

걸음걸음 걸어서 함께 가자


천년만년

내 곁에만 있을 것 같은 님

기다란 한숨 속

한 티끌인데


얼릉

빈 길 위에서

가는 동안

손을 맞잡아 주소


걸음걸음

자갈길 황톳길

아스팔트

갈라진 길

서로 마음 달래며

그 빈 길을 가자

8.10 빈길2.jpg
8.10 빈길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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