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16 나희덕<귀뚜라미>
연휴 잘 보내셨나요. 지난주 입추를 기점으로 새벽 잠자리에 들어서는 바람의 날이 서 있었지요. 연휴기간동안 미세했던 기온이 확연한 차이를 보이네요. 밤새 내린 장마비로 말복도, 매미도 제 자리를 미련없이 떠났습니다. 새벽을 채우던 빗소리가 멈추더니 어느새 귀뚜라미들의 함성으로 새 아침이 일어납니다. 어제 지인과의 대화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하세요 라는 글을 받았어요. ‘어느 곳, 어느 처지에 있더라도 주관을 잃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되라'라는 뜻이더군요. 한 때일지라도 자연생물들의 삶은 늘 주인으로서의 모습입니다. 매미도 귀뚜라미도, 능소화도, 소국화도. 그들의 당당한 모습은 작은 일상에 큰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은 나희덕시인의 <귀뚜라미>예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귀뚜라미 -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 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을 하나 올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 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 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 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