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152

2022.9.16 이근배<살다가보면>

by 박모니카

책방에서 시를 나누고자 하는 행사 중 시낭송이 있답니다. 5월 싱그런 봄날, 8월 한여름 밤, 이렇게 두 번 했어요. 낭송을 처음하는 사람부터 낭송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와 낭송의 목소리는 책방의 품격을 높여주었죠. 일상을 예쁜 구슬로만 꿰매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책방에 있으면 그런 유혹을 자주 받는답니다. 하긴 낮에는 푸른 산과 꽃이 지켜주고, 밤에는 달과 맑은 고요가 둘러싸니 절로 신선처럼 놀고 싶어지죠. 그러나 어디 사는데 그렇게 쉬울까요. 어제는 무슨 일이 그리 많았던지, 저의 ‘매일약속달력’칸에 써 있는 일정들이 야속했답니다. 일의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여 동시다발로 일처리를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도 많은 일에 생각이 엉키는 횟수가 늘어나네요. 어젯밤 달을 보며 조언을 구했지요. ‘과불급하지 않고 중용의 삶을 체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달이 분명 무슨 말을 해주었으련만, 너무 멀리 있어서 그랬을까요? 들리지 않아 낙담하고 있는 차에 우연히 오늘 낭송시간에 배웠던 시 하나가 달님 미소지으며 앉아있네요.

이근배시인의 <살다가보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살다가 보면 - 이근배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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