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151

2022.9.15 강형철<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by 박모니카

친정엄마는 말씀하셨죠.

“낼 아침 시간있냐. 식도(고향섬)에서 가져온 배추씨를 좀 뿌려보자. 남들은 벌써 다 심었더라만 빈 땅도 아깝고 하니 두덕이나 좀 만들어볼수 있능가 김서방한테 말해바라."


어제 낮에 본 벼이삭들의 물결이 생각나서 텃밭에 남은 작물도 따고, 배추씨도 뿌릴 겸 새벽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어느새 귀뚜라미 콧등에 찬서리가 내리는지 간밤, 그들 소리에 힘이 없더니만 새벽을 맞은 제 콧속으로 어설픈 서리 냄새가 스치네요. 확실히 자연은 가을문턱을 넘어섰네요. 배추씨를 뿌리려 나오면서 자부하길, 나의 손발이 아니면 그 무엇이 가을을 부르겠는가 싶었던 오만이 순식간에 사라졌지요. 하늘이 내려준 가을이 저를 부르고 있었던 거지요. 성실하게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려구요. 눈 앞에 펼쳐진 벼 단풍의 순리,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이 참된 삶이야‘ 라고 보여주고 들려주네요. 고맙습니다 가을님!

더불어 얼마 전 읽었던 시, 강형철 시인의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가 생각납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 강형철


사람의 손으로 가을은 거두어지고

사람의 눈 위 바람결에 뉘어지는

벼이삭의 몸짓은 출렁일 수 있지만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


창호지 바른 문지방 너머

실눈을 뜨고 마당가에 꽂히는 햇살

굳은살 박힌 손끝을 바라보지만

기다려서 가을은 오지 않는다


가을은 하늘에서 제 맘대로 온다


돌자갈 섞인 황토흙에서

유리 조각은 난반사되며

때로 우리가 손발을 긁혀

한 잎 어린싹을 키워보지만

하늘에서 사알짝

사람의 눈짓을 지어보지만


가을은 사알짝 하늘에서만 온다.


(참고)

강형철 시인은 군산태생으로 숭실대학교에서 은퇴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대표작품으로는 첫 시집 <해망동 일기>를 포함하여, 2집<야트막한 사랑>, 3집<도선장 불빛아래서>, 4집<환생>, 그리고 2020. 5월 동인시집이 있습니다. '삶은 곧 시, 시가 곧 삶'이라는 명제로 앎의 지식과 실천의 지혜가 일치하는 민중시인 이십니다. 올 10월, 제5집을 통하여 귀향후 고향에서의 당신믜 삶 속 이야기를 드릴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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