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20 정용철<가을소원>
말랭이마을사람들의 인터뷰와 사진 촬영이 있었어요. 올해 제 이야기책의 주인공이 그들이지요. 저 역시 마을사람이 되려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갖지요. 어느 점심 경로당을 찾아가 ‘밥 주세요’, 오징어를 다루는 어른 곁에 앉아서 ‘아, 삶아서 초고추장이랑 먹으면... 침 넘어가요.’ 라고 말합니다. 보통이상의 너스레 소통을 하고 나면 그들과 쉽게 정이 통합니다. 정이 통하면 그들의 말은 단순한 소리 그 이상이 됩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들의 말소리가 아닌 한 사람의 일생이 담긴 삶의 각본을 읽는 것 같지요. 고생하고 산 어른들이 말하는 가장 흔한 말, ‘내 얘기를 영화로 만들자면 수 백편은 찍을걸세.’ 사진을 찍을 때도 그들의 청춘시절 얘기로 운을 떼면 저절로 자연스런 ‘본디 웃음’이 나옵니다. 촬영하는 현장을 동행하면서 젊은 사진작가들의 유려한 입담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보며 ‘진짜 사진’을 찍는데 필요한 가장 큰 도구임을 배웠습니다. 마을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제 글 속에는 그들의 모습을 꽃으로 비유했는데,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보니 오랜세월 풍파를 이겨온 진짜 꽃들이 그곳에 있었답니다.
오늘의 시는 정용철시인의 <가을소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소원 - 정용철
굳어 있는 몸을 풀 수 없을까.
딱딱한 얼굴을 펼 수 없을까.
닫혀 있는 마음을 열 수 없을까.
조금씩 쌓여 차돌처럼 단단한
내 삶의 어제를 오늘은
작은 망치를 들고 톡톡 건드려
실금이라도 내면 어떨까
횡단보도를 지날 때 누군가와 부딪혀도
허허 웃어 버리는 무방비의 휘청거림을
버릇 삼고 살아 보면 어떨까.
쌓고 닫고 누르고 조이며 살아온
내 슬픈 이야기를 햇살 좋은
가을, 갈바람에 실어 하나씩
풀풀 날려 보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