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155

2022.9.19 김하리<상사화>

by 박모니카

어제 아침 책방에서 편지를 쓰고나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났지요. 이사 후 짐정리가 안되어 어설프고 낯선 집.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방 한칸이라도 정리해야지. 사실 속내에는 선운사의 꽃무릇만개가 떠올랐지요. 그냥 꽃구경 간다 하면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미리 연막을 친 거예요. 글쓴다는 핑계로 이곳저곳을 다녀보고 싶지만 바쁜일정은 저를 놓아주지 않아요. 말 그대로 ’틈’을 타서 번개처럼 움직입니다. 짧은여행이었지만 오랜만에 남편과의 여행 속 대화도 즐거웠구요. 선운사에 도착하니 인파가 더 장관, 저희부부는 푸른하늘과 구름, 꽃무릇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찍어주었죠. 상사화의 일종인 붉은 꽃무릇은 꽃이 진 후에 잎이 돋아나니 서로 만나지 못하지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인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하지만 저는 여러분과 이룰 수 있는 만남을 기다립니다. 오늘의 시는 김하리 시인의 <상사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상사화 - 김하리


사랑아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느껴 보지도 못했지만

그리움으로 잎 열면

대궁 속 깊이 깊이

비가 차오른다.


하냥 길어진 목

기다리다 지쳐

아, 미처 꽃 피우기도 전에

피어 오른 잎 사이로

사랑은 사위고

그냥 먼발치서

지켜보는 사랑아


짝사랑도 사랑이려니

한 여름 여섯 꽃잎

활짝 피걸랑

내 입술이며

내 가슴인 줄 알아주어요

다시 비 오고 꽃잎 떨어지걸랑

내 눈물이며 내 몸인 줄 알아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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