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기하지. 자연의 이치가. 바람이 달라졌어요. 냄새도 다르고 촉감도 달라. 태풍 때문인가? ” 새벽잠에서 깨어 발끝에 있던 이불깃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간밤에 울어대던 마이삭도 어느새 자취를 감춘 아침, 다른 지역의 피해소식이 궁금해서 핸폰을 열었다. 집안에서 텔레비전이 제 역할을 못한지 일 년이 넘어간다. 그래도 세상 소식을 모르는 게 없으니, 진작에 없애도 될 물건이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물 한잔 마시고 방바닥에 누워 복부살 빼기 운동 5분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오늘의 필사 시를 쓰려고 시집을 여니, 함민복 시인의 <구름의 주차장> 이란 시가 눈에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함민복 시인의 또 다른 시 <긍정적인 밥>을 애송하는 편이어서 시인 이름 하나보고 오늘의 필사로 결정했다.
2020.9.3.필사 (95번째)
구름의 주차장 - 함민복
구름의주차장에서
구름을 기다렸네
구름은 오다
구름을 버리고 흩어졌네
눈알을 달래
마음을 풀었네
눈알을 마음을 믿은 죄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어
구름에서 멀어지고 있네
나는
나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네
시 한편을 필사해서 후배들과 공유하고, 사무실로 가는 길에 나섰다.
“당신, 저 하늘의 구름 좀 보소, 특히 저 소나무도 좀 봐. 간밤에 태풍으로 시원스레 목욕 했고만.”이라고 남편이 말했다. “당신이 시인이네. 나무가 목욕했다는 표현이 멋있네요. 역시!”라고 칭찬했다. “우리 각시의 칭찬을 받으니, 오늘은 좋은 일이 있겠어. 우리 편의점표 모닝커피나 한잔할까?”
커피를 가져온다는 남편은 막상 석류음료를 가져왔다. 빨간색이 눈에 띄어 여성호르몬부족을 채워준다는 석류를 가져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목욕을 한 소나무를 앞에 두고 저절로 인생얘기가 나왔다.
어젯밤 읽은 철학자 최진석교수의 <동사속에서 세계와 호흡하라>의 한 구절을 들려주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말을 재 해석한 철학자의 논리를 나의 현실에 적용시켰다.
‘우리 부부가 노년을 맞이하면서 소유로 살 것인가? 존재로 살 것인가?’에 대하여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다.
결론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많은 세상에 살고 싶다는 쪽으로 말을 맺었다. 인간이 소유하는 도구가 많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존재라 할지라도 그 본래모습으로 존대 받고 존대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뱃속부터 컴퓨터를 알고 나오는 아이들이 많은 세상이 무섭다고 했다. 이러다간 내 몸에 칩을 넣어서 나의 존재를 물질로서 분석하고 파악하는 세상에 살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줌’이라는 컴퓨터 화상회의를 알고 이용하는 현실이 되었다. 어느 순간, 거리마다 하얀 마스크가 넘실거리고 말을 대신하는 웃음의 미학이 배제되는 사회가 되었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보호막 캡슐을 내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같은 행동이 있어야했다. 이런 사회변화가 서서히 와서 나도 역시 준비할 시간을 가졌기를 희망했다.
태풍도 미리 예고하며 준비하라고 말하는데, 코로나는 예고 없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이 변화가 득이 될지 해가 될지 알 수도 없는 생각에 종종 나는 내 갈 길을 헤맨다.
이런 혼돈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시간의 흐름이다. 어느새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자리를 내어주더니 여름의 사신도 가을의 전령에게 치어 함흥차사가 되었다. 곧 있으면 겨울이 두터운 옷을 입고 장승처럼 내 곁에 올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또 한번의 주름 층이 쌓이면 또 다른 색으로 단장한 봄이 도착 할 것이다.
이 흐름에 의존하여 무소유의 존재로서 나를 맡겨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언젠가 저기 저 흘러가는 구름의 주차장에서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바람에 실려 갈 나를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