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났냐? 갈 만하면 밭에 좀 가보자. 큰 태풍이 또 오기 전에 남아 있는 호박이나 고추, 가지들 있으면 가져와서 반찬거리나 만들어야 겄다. 일요일에 섬에 가서 먹을 것도 좀 챙기고.”
태풍 비바와 마이삭이 다녀간 후, 밭에 가야지 하고 미루기만 했더니, 드디어 엄마의 호출을 받았다.
“예, 저도 오늘쯤 가려고 했어요. 무슨 태풍이 또 온다고 하네요. 호박 몇 개는 열렸어야 하는데. 올해는 비 때문에 고추도 폭망하고 재미가 없네요. 20분 까지 도착할거니까, 나와 계세요.”
뭐라도 열렸으면 따야 된다고, 엉덩이에 붙여 앉는 의자와 장갑, 장화를 들고 나오셨다. 아침엔 꼭 곡기가 들어가야 된다고, 두유 두 팩도 챙기셨다. 아고고고, 이놈의 허리 다리가 며칠 동안 끊어질라고 했다고, 어젯밤에 처음으로 깊은 잠을 잤다고 하면서 간신히 차에 오르셨다.
며칠 전 텃밭식구 정아씨 짝꿍이 윗밭 아랫밭 할 것없이 풀이란 풀은 모두 베었다고 했다. 나도 옥수수를 따고 난 후 옥수수대를 치우지 않았다. 이 비 오고 나면 치워야지를 몇 번 반복하다가, 살며시 게을러지고 그러다가 잊혀지곤 했다. 그런 땅의 잡풀들을 깔끔히 다 베어준 것이다.
도착하니, 태풍 비바가 오기 전 하고는 하늘과 땅처럼 달라져 있었다. 무성해져서 내 키 만큼 자랐던 풀들이 다 누워있었고, 옥수수 대 역시 반듯반듯한 자름새로 널부러져 있었다. 일단 옥수수대가 누워있는 자리를 치우고 배추 무우를 심을 터를 고르는 일은 남편이랑 다시와서 손 봐야겠다 싶었다. 가져갈 만한 열매나 있는지 살펴보자고 했다.
엄마는 호박밭 쪽으로, 나는 고추대 쪽으로 갔다. 올해 심은 모종 중 가장 손해가 큰 것은 고추모종이었다. 작년에 결실이 좋아서 한 겨우내 먹었던 태양초 고춧가루를 생각하며, 고추모종에 가장 많이 투자했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고 농약을 사용치 않으니, 탄저병 인가 하는 것으로 완전히 폭삭 주저 앉았다.
고추를 딸 때, 한 물고추, 두 물고추, 세 물고추 등, 시기별로 나올 고추만을 생각 했는데, 병이 퍼져서 주변에 있는 텃밭 가족들의 모든 고추들이 회복 불가능한 환복을 입고 있었다. 첫 물, 두 물은커녕, 멀쩡한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들었을 정도 였다. 가을 찬바람이 불고, 태풍 끝자락에 오늘도 멀쩡한 고추 여남개 만을 얻었다.
“오메, 꼭지 떨어진 놈 하나 여기 있다. 안 썪고 잘도 자랐네. 이거봐라.”하면서 들어올리셨다.
“우와! 역시 호박이 최고야. 엄마, 올해도 엄마 호박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네요. 우리 이번 것이 몇 번째죠? 한 열 개는 딴 것 같은데요. 사진 찍게요, 엄마 멋진 포즈 부탁.”
호박은 노란 꽃잎 따라 갈래갈래 치 다른 넝쿨의 끄트머리를 따라가다 보면 꼭 제 얼굴을 보인다. 오늘 호박도 얼마나 제 모습을 보이고 싶어했을꼬. 특히 호박씨 주인인 엄마의 발자국 소리를 하염없이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신이나서 몇 발자국 옮기며, 넝쿨 자리를 들춰보기 바빴다. 여기도 하나, 어이쿠, 여기도 하나. 무려 노란 호박을 세 개나 거두었다. 또 생선탕에 제격인 푸른 호박을 두 덩이나 걷어 올렸다.
호박들과 가지들을 밭의 한 고랑에 놓고 생생 체험 현장의 포스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는 것만큼 행복 한때가 또 있을까. 작년에도 호박과의 인연을 글로 써서 모 공모전에서 상금을 받았다. 무려 40만원이나 받아 엄마에게 용돈으로 드리고, 나온 책자를 엄마 고향 친척들에게 소개도 했다. 그러니 텃밭에 대한 엄마와 나의 기대가 갈수록 하늘을 향해 있을 수밖에.
오늘 얻은 큰 호박은 씨를 받아서 내년에 심을 모종을 준비해야겠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 오늘도 엄마 덕분에 글감하나 생겼네요. 요즘 매일 쓰기가 숙제인데요, 무엇을 쓸까 고민했거든요. 역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먹는 법, 마미 탱큐 쏘우 머취!”라고 했다.
"자고로 사람은 어차피 죽어서 땅 속으로 갈 것을, 살아 있을 때, 눈뜨고 하나라도 재미난 것을 찾아야지.
행복이 뭐 별거 있다냐. 제 손발 쓰며, 몸을 놀릴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행복이지" 라고 말씀하시는 울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