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1 이기철<어쩌다 시인이 되어>
올해 첫 에세이집을 준비하는 문우의 초고를 읽어보았습니다. 삼 년 전 모 에세이수업에서 저의 첫 글을 수정해준 작가의 빨간펜. 그때의 화끈거림은 이 세상 빨간색들을 모두 다 섞어 만든 도가니화염 그 이상이었지요. ’조언을 받을 것이냐, 글쓰기를 그만둘 것이냐‘, 만 하루동안 성찰 후 제 글쓰기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초고라는 첫 얼굴에 자신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이곳저곳 글을 쓰지만 부끄러운 저를 표현하는 일은 보통의 용기로는 결코 할 수 없지요. 매일 아침편지 역시 저의 용기를 시험합니다. 중용 20장의 한 구절, 사람들이 지켜야 할 五道와 이를 행할 수 있는 知仁勇(지인용)을 들으면서 글쓰기에도 이 이치를 적용해봅니다. 知(글쓰기를 배우고),仁(글쓰기를 체득하여), 勇(글쓰기를 행하기)은 天下之達德也(천하사람들 누구나 마땅히 행할수 있는 덕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글쓰는 분들이여, 매일 쓰는 용기가 당신을 작가로 만든답니다. 오늘의 시는 이기철 시인의 <어쩌다 시인이 되어>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쩌다 시인이 되어 - 이기철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
내 가진 것 시인이라는 이름밖엔 아무것도 없어도
내 하늘과 땅, 구름과 시내 가진 것만으로도 넉넉한 마음이 되어
혼자라도 여럿인 듯 부유한 마음으로
이 세상길 걸어가네
어쩌다 떨어지는 나뭇잎 발길에라도 스치면
그것만으로도 기쁨이라 여기며
냇물이 전하는 마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더없는 은총이라 생각하며
잠시라도 꽃의 마음, 나무의 마음에 가까이 가리라
나를 채찍질 하며
남들은 가위 들어 마음의 가지를 잘라낸다 하지만
나는 풀싹처럼 그것들을 보듬으며 가네
내 욕망의 강철이 부드러운 새움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체온으로 그것들을 다듬고 데우며 가네
내 어쩌다 시인이 되어
사람과 짐승, 나무와 풀들에 눈맞추며
맨발이라도 아프지 않게
이 세상길 혼자 걸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