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08

2022.11.11정재록 <사람과 사람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by 박모니카

가을은 역시 붉은 감의 친정입니다. 책방 옆집 감나무 끝에 달린 작고 단단한 땡감이 보이더군요. 화창한 가을채색에 홍조를 띠우는 감을 한참동안 보았습니다. 혹시나 지나가는 새가 앉는 장면을 사진에 담을까 하구요. 제 어린시절엔 유독 땡감이 많았지요. 보리쌀독에 깊숙이 넣어 두고 익기를 기다리던 그 감은 아버지의 간식. 배(어선)를 타고 돌아오신 아버지를 환대하는 엄마의 사랑법. 그래서일까요. 저도 역시 과일 중 감을 가장 좋아하지요. 사무실에 놓고 간 후배의 고마운 대봉시를 보며 아버지를 떠올리며 동료들의 책상마다 대봉시를 놓았어요. 올해는 감이 풍년. 지나가시는 길에 붉은 미소 한점 보시거든 모른체 마시고 손길 내어주세요. 당신의 심장이 더 붉어질테니까요. 오늘의 시는 정재록시인의 <사람과 사람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사람과 사람의 경계에서도 꽃은 핀다 - 정재록


우리 집으로 가지 하나 담을 넘은

앞집 감나무가 그랬다

놈이 떨군 감꽃을 목에 걸기도 하고

땡감을 물에 우려먹긴 하면서도

담 넘어로 당당하게 뻗어 온 팔뚝이

우리 집을 넘보는 것 같아서 늘 떫은맛이 남았다

해거리도 없이 매년 공중에 붉은 노적가리를 쌓는 것이

잘 사는 집 유세로 보여서

감들이 탐스럽게 볼 붉혀가며 단내를 풍겨도

따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먼저 기가 죽었다

감나무에서 그 어마어마한 노적가리를 허물 때면

담 넘어 온 가지에 달린 족히 한 접은 되는 감들이

그 집 호의로 번번이 우리 차지가 되곤 해도

고운 때깔에 비해 맛은 덜했다

감들도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담 넘어 온 감나무는 담이 없어도

이쪽으로 팔 하나를 뻗었겠지

사람이 담을 쌓았고,

나무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 담을 넘었을 뿐이지

그보다는 앞집 흥성한 운세가 우리 쪽으로 파이프 하나를 댄 거지

그래서 그 쪽 텃밭의 푸성귀들이 그렇듯 푸른 기운이 장한 거지

그런 생각이 들 때까지 나는 한참 더 커야했다

그때부터 그 감들이 입에 달던 거였다.

11.11 대봉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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