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41

2022.12.16 허형만 <겨울들판을 거닐며>

by 박모니카

금요일. 제게도 올해 가장 가벼운 날입니다.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왔네요. 말랭이마을사람, 책방지기, 출판사대표, 자원봉사자 그리고 제 본업인 영어학원장. 무슨 일이든 시작을 하면 끝을 보고 싶고, 그것도 좋은 모습으로요. 어제도 또 한 권의 시집출판을 위한 최종싸인을 받으며 올해 기획했던 출판업무도 마무리했습니다. 책방에 인터뷰차 오신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저를 되돌아보았지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제 두 팔을 벌려 손끝에 닿는 모든 생명들과 이로움을 나눌 수 있는 마음. 공공의 진선미가 펼쳐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재미. 남에게만 바라지 않고 내가 먼저 하는 무조건적 실천. 저 이런 삶이 좋더라구요. 종이에 박혀 있는 삶이 아니라 책 밖으로 튀어나온 활자들이 제 몸에서 춤추는 모습이 좋아요. 더러 달콤한 과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익어가는 과정 속 쓰라린 아픔이 더 큰 공부라는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어제처럼 오늘도 겨울 들판을 거닐며 큰 공부 하렵니다.

오늘은 허형만 시인의 <겨울 들판을 거닐며>를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 들판을 거닐며 -허형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고 있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책방 뒤 월명산 오름길 정자
월명산 상징 수시탑을 바라보는 눈 덮인 의자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침편지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