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44

2022.12.19 이근배<겨울행>

by 박모니카

주말에 눈이 쏟아져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운전하는데 때 맞춰 지인이 시 한편을 보내주었지요. 이근배 시인의 시라서 얼른 한쪽으로 차를 멈추고 읽었지요. 첫 소절에 ‘풍설’이란 시어는 마치 중용의 이치를 알려주는 듯했답니다. 바람이 데려다주는 눈인지, 눈이 바람을 따라왔는지는 몰라도 말 그대로 풍설(風雪)이었거든요. 풍설따라 저도 취한 듯 마음이 취해서 주말내내 눈(雪)과 함께 잘 놀았습니다. 어제는 미사 참석 후 말랭이마을에 가서 항아리와 골목골목 쌓인 눈을 찍느라 신발을 다 적시며 돌아다녔네요. 오후에는 마을 어머님들이 만들어주신 파전에 막걸리 두 숟가락 정도를 마셨구요. 새해 우리 말랭이마을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가면 좋을까도 얘기하고 어머님들의 옛날 겨울얘기도 들으며 맞장구를 치니 사랑을 엄청 쏟아주시더군요. ‘내일 점심 꼭 밥으러 와... 송년잉게’ ‘저도 송년잉게 케익하나 가져갈께요’ 하고 돌아왔지요. 주간 첫날, 크리스마스 주간, 하늘이 제게 내려주신 수많은 선물에 감사의 맘을 모으는 주간입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요!

오늘은 이근배 시인의 <겨울행>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행- 이근배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 없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다닌다

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 어머니.

어머니.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엘 가고 싶습니다

그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 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雪害木 쓰러진 자리

생솔 가지를 꺾던 눈밭의

당신의 언 발이 짚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 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

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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