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45

2022.12.20 고은<두고 온 시>

by 박모니카

올해가 가기 전 2주간, 일상루틴에 두 가지를 끼워놓았죠. 하나는 창비에서 열린 ‘시 필사’동행, 또 하나는 시낭송 한편씩 듣고 따라해보기 랍니다. 겨울철 들어와 게을러진 마음을 세워볼까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아침편지까지 합하면 최소 3편 이상의 시를 만나는 거네요. 그런데요, 요즘 시인들의 시는 왜 이렇게 난해할까요. 분명 단어는 쉬운데 시가 호흡하며 내뱉는 감정이 너무 거칠어서 이해력이 짧은 저는 고개만 갸웃거려요. 제가 나이를 먹어서 현대적인 사유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다가오질 않더군요. 어젯밤에도 세 편의 시 속에 들어있는 시어들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40년대 시, 70년대 시, 그리고 2000년대 시. 오래된 시일수록 제 감정의 농도도 진해집니다. 그렇다고 현대시를 쓴 시인들의 작품을 모두 멀리하는 것은 아니예요. 아마도 제 아들딸의 세대들은 저와는 다른 각도에서 그 시들을 읽겠죠. 세대간의 소통을 위해서라도 현대시인들의 작품 역시 잘 품어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맘은 자꾸만 뒤로가는 시간열차에 올라타서 옛 시인들의 시를 찾습니다. 오늘은 고은 시인의 <두고 온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두고 온 시 / 고은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간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던 길 돌아서지 말아야겠지

그동안 떠돈 세월의 조각들

여기저기 빨래처럼 펄럭이누나

가난할때는 눈물마저 모자랐다

어느 밤은 사위어가는 화툿불에 추운 등 쪼이다가

허허롭게 돌아서서 가슴 쪼였다.


또 어느 밤은 그저 어둠 속

온몸 다 얼어들며 덜덜덜 떨었다.

수많은 내일을 오늘이 다 될때까지

나는 곧잘 뒷자리 손님이었다

저물녘

산들은 첩첩하고 가야 할 길은 온 길보다 아득하더라


바람불더라 바람불더라

슬픔은 끝까지 팔고 사는 것이 아닐진대

저만치 등불하나 그렇게 슬퍼하라

두고 온 것이 무엇이 있으리요만

무엇인가 두고 온 듯

머물던 자리를 어서어서 털고 일어선다.

물 안개 걷히는 서해안 태안반도 끄트머리쯤인가

그것이 어느 시절 울부짖었던 넋인가 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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