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56

2022.12.31 김현승 <이별에게>

by 박모니카

2022년 검은 호랑이가 저 멀리 가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어디에서 봤을까요. 1박 가족여행을 광주로 와서 우연히 화순군 이서면에 적벽강이 있는걸 알았어요.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으로 유배를 온 신재 최산두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보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이름 붙였답니다. 무엇보다 제 발걸음을 옮기게 한 것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1863) 때문이었죠. 전국 팔도를 향하던 그의 발걸음을 붙잡고 이곳의 풍광을 노래한 그의 시(1841년)를 읽었어요.


무등산고송하재(無等山高松下在) 무등산이 높다지만 소나무 아래요

적벽강심사상류(赤壁江深沙上流)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로 흐르는구나


김삿갓은 이곳 화순에서 10년 가까이 머물며 방랑을 끝내고 마지막을 고했다네요. 골짜기 따라 들어갔지만 출입통제로 막상 화순적벽의 겨울풍광은 보지 못했어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나오는데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듯한 산 등줄기가 보이는 거예요. 얼마 전 내린 눈으로 산줄기마다 희고 검은 색의 조화로운 풍경이 장관이었지요. 검은호랑이의 마지막 길 같은 풍경을 보는 것도 제게 큰 행운이었죠. 올해 당신을 지켜주던 호랑이의 마지막 하산길에 서서 아름답게 이별하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오늘의 시는 김현승시인의 <이별에게>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이별(離別)에게 - 김현승


지우심으로

지우심으로

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

흩으심으로

꽃잎처럼 우리 흩으심으로

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

비우심으로

비우심으로

비인 도가니 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

사라져

오오,

永遠을 세우실 줄이야

어둠 속에

어둠 속에

寶石들의 光彩를 길이 담아 두시는

밤과 같은 당신은, 오오, 누구이오니까!

화순적벽을 돌아나온 길에 둘러싼 산등성이는 마치 검은호랑이의 등줄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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