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275

2023.1.19 정지용 <향수>

by 박모니카

오고가는 길목에 가득 쌓인 선물포장을 보면서 설 대목이 목전에 왔음을 느낍니다. 얼마 전 어떤 기사에 <올해 설에는 00 안 하기로 했습니다>의 제목으로 투고요청 하더군요. 예를 들어, '현금(세배돈) 투척, 고향 방문, 차례지내기, 명절여행, 세배 받기, 취업, 결혼, 출산에 대한 질문' 안 하기로 했습니다 등의 제목으로요. 명절 증후군 중 대표적으로 시댁에 가서 음식 장만하는 며느리의 어려움이 있지요. 세상이 많이 변해서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졌다 해도 아직 우리사회는 일부 약자, 특히 여성에게 과중되고 불균형된 관습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해마다 설에 00을 하고 싶습니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어느 날부터 사라지고 있는 민족명절 관습들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너무 고리타분한가요. 군산은 작은 도시라, 명절이라도 있어야 사람냄새 난다고 말하지요. 인사할 곳도 많고, 지출되는 경비도 많지만 명절로 가족 간, 친지 간, 지인들 사이에 작은 선물이나 글로 인사하면 얼마나 좋은가요. 어린자녀에게 세배주고받기는 세배돈 받기의 행위가 아님을 가르치고요. 차례지내기는 우리가 먹을 음식에 숟가락 하나 더해서 정갈하고 소담스럽게 준비하면 되구요. 당연히 금지해야 할 질문들도 있지요. 그렇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의 아름다운 가치를 없애버린다면 우리의 존재도 사라질 것 같아 요즘세상 고루하게 들리는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오늘의 시는 정지용의 <향수>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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