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손님을 맞이하는 저의 일상에는 분주함이 가득합니다. 명절이란 이름으로 그동안 안부가 소원 했던 지인들에게 덕담과 인사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해가 갈수록,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가 하는 두려움이 쌓여, 더욱더 진정을 가지고 선물을 고릅니다.
오늘 추석에는 시댁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둘째 며느리인 저의 청을 받아주신 아주버님께서 시댁에서 맞는 명절 전날의 모임을 안해도 된다고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대신 추석날 아침, 부모님 성묘에는 참석하자고 했지요. 덕분에 전날 음식 준비도 없었구요. 아침 일찍 얼마전 벌초한 시댁 부모님의 묘소를 뵙고 잔디 밭에 서서 덕담도 나누었습니다.
가을 아침 햇살의 온기가 선조들의 지붕위에도, 자손들의 머리위에도 우수수수 쏟아진 맑은 추석아침이었습니다.
두번째 도착한 손님은 과수원 대추나무의 붉은 대추들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흔한 요즘 세상, 대추나무도 모르고 대추도 잘 모르는 요즘 애들.
그나마 친척들은 과수원 덕분에 성묘를 찾은 후 대추털기에 재미를 붙이지요. 어른 애들 할 것 없이 모여서 한바탕 소란을 떨고나면 대추알들이 소쿠리에 가득 채워집니다.
대추는 제사상의 과일 줄에서 가장 상석을 차지하지요. 특히 갱년기를 맞는 여성들의 건강에 최고라며 집안의 남자들이 챙겨주었답니다. 오늘의 배당분은 제가 가지고 왔지요. 과일청 처럼, 대추청을 담아보려구요.
세번째 문을 두드린 손님은 다름 아닌 가을의 우주, 코스모스 꽃이었습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민간이 사는 땅에 헬기사격장을 지정한다고 데모 꽤나 했던 곳이지요. 그런데 관의 공사가 언제 한번 포기한 적 있던가요. 힘없는 농촌 사람들의 의견은 장마철 폭우에 쓰러진 벼 이삭처럼 되었었지요. 그런데 오늘 우연히 저 멀리서 한들한들 거리며 알록달록으로 손짓하는 이가 있어 누군가하고 발 뒤꿈치를 들었답니다. 코스모스부대였어요.
언제 이렇게 변했지?
바로 옆에는 헬기 사격장이 있고, 바로 옆 이천평쯤의 땅을 산 00시는 코스모스 밭을 조성했었다네요.
헬기는 눈에 안보이고 코스모스는 천지에 가득했어요. 큰 동서왈, 저기서 사진 찍는 사람들은 서울 촌놈들이라고. 딸과 저는 서울 촌놈이 되보기로 했어요. 꽃보다 더 예쁠 수는 없지만 꽃의 마음만을 닮고 싶어서였죠. 보너스로 아직은 빛이 덜한 황금 들판과 저녁 노을도 선물 받았구요.
네번째 손님은 누구일까요. 바로 저의 첫 책이 될 1차 인쇄본의 PDF파일이예요. 글 꼭지가 너무 적어서 100페이지나 될까 했어요. 다행히도 편집자의 손을 거치니 페이지 수도 늘고, A4용지를 벗어난 모습이 마치 책 같았어요. 추석 연휴기간동안 여러번 읽어보고 수정할 곳을 찾으라고 했어요.
책이 나오기 까지, 딱 한달 남았네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출판 기념일로 잡았으니까요. 혼자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에세이 팀원들이 함께 힘을 모으니 이렇게 진행되고 있답니다. 오늘 만난 가을손님 중 최고의 환영 악수를 청했답니다.
아침에 시월의 첫 날이 오더니 지금은 시월의 첫 날이 가려합니다. 매일이 첫 날인 것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니예요. 지금부터라도 새 마음으로 살고 싶어져서 매 순간 다짐을 한답니다.
이러다 보면 새맘으로 덮인 세월의 더께도 두터워지겠지요. 그 세월 속에 오늘 만난 손님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