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331

2023.3.15 고은 <길>

by 박모니카

글을 읽다보면 풍경이 함께 떠오르는 때가 많지요. 특히 옛 시를 읽을 때 풍경을 절로 불러내는 시어들을 만나면 소리내어 낭독하게 됩니다. 어제는 지역의 모 시인이 들려주는 그림같은 시의 한 예시를 잠깐 들었습니다. 시인 서정주의 시였어요, 그가 쓴 수많은 아름다운 시만큼 훌륭한 삶을 살았더라면 좋았을 시인이지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친일의 행적을 담은 시가 남아있는 한 그의 시가 온전히 사랑받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구별해서 따로 평가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요즘 현 정부의 친일에 가까운 행동들을 보면서 더욱더 말과 글의 중요성을 느낍니다. 이제는 어느 역사시대로 되돌아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네요. 하여튼 제 손으로 남겨지는 글 한 줄에도 부끄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시간이었답니다. 오늘은 다음 주에 있을 말랭이 골목잔치를 위한 회의가 있는데요, 저희 책방은 첫 행사로 ‘군산시인들의 시의 세계’로 초대하는 자리를 기획 중입니다. 일벌이기 좋아한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순간 떠오른 어떤 생각이 좋으면 한번 시도해보는 것을 좋아할 뿐이예요. 귀향한지 20년이나 되었으니, 책방과 출판사 열고 글쓰는 재미가 좋다하니, 이제 군산의 문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볼 때가 되었다 싶어서요. 최근에 시와 시인의 삶이 불일치하여 대중에게 외면당한 고은시인이 있지요. 때가 되면 그의 글과 말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오늘은 고은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고은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군산의 하제 수령 600년 팽나무도 봄길따라 온 사랑의 정기를 마시며 싹 띄울 준비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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