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h My Life

배추와 무의 우아한 품격 '우거지와 시래기'

2020.12.11 김장전 1단계

by 박모니카

지금 이 나이에도 배움에는 끝이 없다. 배추든 무든 모두다 시래기라고 통칭해왔으니 말이다.

작가 강원국씨는 글쓰기강의에서 말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늘 한글 사전을 옆에 끼고 글을 써야된다고. 내가 좋아하는 김훈작가도 그렇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래야지 맘 먹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보고, 단어의 본 뜻과 유의어를 배우고 익혀야지 결심했다.


우거지와 시래기의 차이는 뭘까.

우거지는 보통 배추를 포함하여 다양한 채소의 겉잎을 통칭한단다.

시래기는 무줄기와 잎(무청)을 말린 것을 말한단다. 배추 잎사귀도 말려서 준비하면 배추시래기라고 말하니, 일단 시래기란 표현 속에는 ‘말린다’라는 행위가 있어야겠다.


드디어 어제 내가 심은 배추와 무를 수확했다. 심을 때는 120개였는데, 수확한 배추포기 수를 세어보니 100개. 크고 작은 것들을 다 모으고, 속이 찼든 안 찼든 다 거두었다. 매년 시장에서 사다가 김장을 해주시는 엄마김치를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엄마의 할 일만이 엄청 늘은 꼴이다. 그래도 엄마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참, 땅은 정직하다. 심어놓기만 하면 저렇게 자라고, 먹거리를 주니. 사람 손이 게으르지만 않으면 땅처럼 좋은 것은 없다. 배추 100포기라야 옛날 어선 부릴 때 양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저 한 나절 네 수업이나 조절하고 와서 도우면 금방 끝난다. 내가 언제까지나 니들 김치 담아준다고 움직이겄냐. 이렇게라도 담아줄 때가 행복한거지.”


어제 아침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배추를 뽑아 바로 소금 간 하면 배추가 질기고 맛이 없다고, 뽑아서 하루정도 놓아야 배추가 마음가짐이 달라져 순해진다고, 뽑을 수 있으면 미리 준비하라고 하셨다.

다행히 막내동생 부부가 와서 남편과 넷이서 배추를 뽑았다. 남동생은 배추 줄을 보더니, ‘에게게, 얼마 안되네. 말만 100포기 고만. 속이 덜 찼어요. 엄마가 이럴줄 알고 속 꽉찬 배추 50개 더 시켰네요. 누나가 뭘 알 것냐고 하시더만 맞고만~~.“


남자 둘은 단숨에 배추를 잘랐다. 이왕이면 나도 한번 잘라봐야지 싶어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다. 남편은 사진만 찍는 나를 보고

"어고, 그러소. 당신이 심었으니 당신도 거둬야지.” 했다.

알려주는 대로 배추의 가장 아랫 잎만 남기고 칼을 대었는데, 배추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배추 꽁다리(내 표현으로는 배추 똥고)를 너무 짧게 잘라서 그렇다고 한 소리를 들었다. 조금 익숙해 질 만하니 거둘 배추가 없어졌다. 부지런한 남동생부부가 쓱싹쓱싹 다 거두었다.


“배추 거두기가 꼭 인생 같다. 할 만하니 남은게 없네.” 라고 말하니

“누나는 천상 글이나 쓰소.”라고 동생이 말했다.


배추를 거두고 나니 배추잎(소위 우거지)이 펼쳐져있었다. 너무도 아까워서 봉투에 담으니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 너무 욕심내지 말고 그냥 두소. 다 가져가서 언제 삶아서 음식으로 해 먹겠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더 가져가고 싶었다.

나를 드문드문 아는고만!

왠만한 배추잎은 거의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배추 우거지 삶는 법을 찾았다. 생각보다 단순하여, 약 한시간만 공들이면 되겠구나 싶었다. 우거지 삶아서 동생들도 좀 주고 겨우내, 우리 부부 우거지 들어간 사골 된장국 먹을 생각을 하니, 아고야.. 이런 행복이 어디 있을쏘냐.


엄마집에 도착해서 보니, 별도로 사 놓은 배추단과 무단이 쌓여 있었다. 최근 3-4년 사이에는 엄마가 힘들어하셔서 소금간 된 김치를 공수 받았었는데, 오랜만에 집에서 소금 간까지 하는 대 공사를 하게 됐다. 표시를 내진 않았지만, 아버지 배 부릴 때 담았던 김장 1300포기의 과정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과거의 추억을 소환시킨 내가 기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나 동생부부의 노고는 내 생각 뒷전에 물러나 있는 꼴이었다.


사실 며칠 전 엄마가 새벽 시장 갔다가 넘어지셔서 발등 갈비뼈 등에 멍이 지고, 기브스도 한 상태이다. 그 발을 이끌고도 김장에 들어갈 각종 양념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김장준비를 하고 계셨다. 눈치가 보여서 무청을 자르고, 베란다 철망에 널기까지를 도와드렸다.

“엄마, 이 모양이 진짜 이쁘죠. 엄마 집은 햇빛도 잘 들어와. 무청이 고슬고슬하게 말리겠어요. 사진 찍어야지. 내가잘라서 그런지 더 예쁘넹.”

엄마가 나를 보는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나이 육십이 가까워와도 저렇게 속이 없을까, 아니면 철이 없을까. 지 에미 아픈다리 질질 끌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엄마 힘들지 라는 말 한마디 안하고.”


나도 눈치는 당연히 있지. 얼른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김치 담는 날 새벽같이 올께요. 엄마 김치법을 잘 배워야, 울엄마 김치를 담아먹지. 김장 끝나고 저랑 맛난거 드시게요. 용돈도 드릴께요. 맛있게 담아주세요.”


오늘 아침엔, 나의 우거지를 삶았다. 생 배추잎의 양은 많았는데, 막상 삶고 보니 약간 서운했다. 이집저집 나눠주고 나면 겨우내 우리 부부가 먹을양이 부족한 듯.. 욕심이 이래서 무섭구나 싶었다. 삶는 과정도 사진으로 담아놓고, 동생부부에게 줄 우거지도 비닐랩에 넣어놓았다.


이제 이거 들고 동생집에 가서 말해야지.

“짜잔. 좋지. 푸릇푸릇 얼마나 싱싱하고 맛있어보이냐. 네가 사골을 주면 잘끓여서 맛있는 된장국 엄마랑 네 매형이랑, 형들이랑 한번 먹어야겠다.”

동생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드셔요. 우리 누나 하고 싶은대로 다 했으니, 사골은 내가 줄께요.”라고.

오늘도 나의 하루는 푸른 배추 우거지의 향기와 보드라움 속에서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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