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2 천양희 <나는 기쁘다>
“나는 매일 ‘일십백천만 운동’을 해.” “그게 무슨 운동인데요? 선배님”
“일은 하루에 한번 착한 일하기, 십은 열 번 크게 웃기, 백은 백자의 글을 쓰는거, 천은 최소 천자 이상의 글을 읽기, 만은 만보걷기야.” “호올, 선배님 진짜 짱.. 하루가 알토란같아요.”
책방 옆, 중학교에 근무하는 대학선배의 초대를 받아 학교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죠. 옛날 대학 때 얘기, 교육현장은 다르지만 학생들 얘기나누며, 텃밭 선배인 제 말을 경청하는 선배. 몇 십년이 지났어도 언제나 젠틀한 선배의 언행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또 이 학교에 남편의 절친이 있는데요, 군산에 귀향했을 때 어려운 제 가족의 입장을 늘 배려하고 도와준 분입니다. 키우는 자식들의 나이도 비슷하여 남편은 친형제처럼 마음을 나눕니다. 이젠 모두 흰머리가 희긋해도 놀라지 않고, 창가 옆에 놓인 미약한 작은 식물 하나를 자랑할 때도 어린아이 같은 맘이 됩니다. 두 분 모두 글을 쓰며 가식없는 솔직함과 개성이 매력적이죠. 어떤 이는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섭다 하지요. 운 좋게도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해서 그럴까요? 정말 주변에 좋은 인연이 많아서 고맙기만 합니다. 일주일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벌써 오늘이 주말이군요. 누군가 세월의 속도를 나이 곱하기 2라고 했더군요. 어느새 어떤 도로에서도 ‘달리면 속도위반이 되는 나이’. 하지만 실상의 경계를 무너트려도 허락이 되는 곳은 오로지 자연의 품인가 싶네요. 조금만 둘러보면 금세 젊음의 기억을 다시 찾아주는 곳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저도 다녔던 대학 가까이, 신록의 품에 안기는 주말과 마주하렵니다. 오늘은 천양희시인의 <나는 기쁘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나는 기쁘다- 천양희(1942-현, 부산출생)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