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45

2023.6.2 김용택<쓸 만하다고 생각해서 쓴 연애편지>

by 박모니카

유월이라는 숫자 탓인지 하루만에 초여름 텁텁한 공기 한 자락이 집안을 맴도네요. 아직도 이슬이 축축할텐데 답답해서 이 방 저 방 문을 열어 밤새 묵혔던 탁한 숨을 토해냅니다. 이 새벽에 딸도 과제하느라 못 잤다고 톡 하나가 와 있군요. ’나도 이 나이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었을까?‘ 요즘 청년들 참 열심히,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사회구조가 그들에게 파라다이스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러저리 떠오르는 혼란을 털고 침대 위에 놓인 노트북으로 음악하나 틀고 책들을 넘깁니다. 어제는 ’희망도서대출‘을 위해 오랫만에 책방에 신간을 들여놓으며 읽을 책, 추천할 책을 나눠보며 읽을 사람들을 생각했어요. 아마도 책방주인이 되면 남들보다 먼저 새 책을 만지는 맛에 빠지겠구나 하며 책 표지와 목록들을 살폈답니다. 신청한 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저도 몇 권을 찜했는데 김소월시에 천경자의 그림이 있는 <진달래꽃>, 김용택 신간시집, 박재희 고전책을 머리맡에 가져다 놓았던 거지요. 어젯밤에는 써야될 글도 있는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싫어서 누워서 <진달래꽃>과 그림을 감상하다 잠들었지요. 오늘 책방 글쓰기 모임의 주제가 ’연애‘여서 그런지 김용택 시인의 시집<모두가 첫날처럼, 창비2023>의 한 페이지를 열었더니 이런 제목이 눈에 띄네요. <쓸 만하다고 생각해서 쓴 연애편지>. 이런걸 우연의 일치라고 하나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 一日不讀者(일일부독서) 口中生荊棘(구중생형극) - 안중근 의사 덕분에 이런 표현이라도 중얼거림이 그나마 다행이구나 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봄날산책 문우들은 어떤 이야기로 ’연애‘를 나눠줄까. 어느새 집안으로 들어온 새 아침 산소입자들의 떨림이 제 몸속으로도 들어옵니다.

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쓸 만하다고 생각해서 쓴 연애편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쓸 만하다고 생각해서 쓴 연애편지 – 김용택(1948-현, 전북임실)


창문을 열어놓고 방에 누워 있습니다

바람이 손등을 지나갑니다

이 바람이 지금 봄바람 맞지요? 라고

문자를 보낼 사람이 생겨서 좋습니다

당신에게 줄 이 바람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이상하지요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 말이 그 말 맞네요

차를 타고 가다 어느 마을에 살구꽃이 피어 있으면

차에서 내려 살구꽃을 바라보다 가게요

산 위에는 아직 별이 지지 않았습니다

이맘때 나는 저 별을 보며 신을 신는답니다

당신에게도 이 바람이 손에 닿겠지요

오늘이나 내일 아니면 다음 토요일

만나면 당신 손이 내 손을 잡으며

이 바람이 그 바람 맞네요, 하며

날 보고 웃겠지요

무슨 꽃일까요...고향은 제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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