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67

2023.6.24 천양희 <그는 낯선 곳에서 온다>

by 박모니카

어쩌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정직하게 나이를 말해주는 얼굴인가 싶다가도 아니 아니 더 젊은 얼굴이면 좋겠다 싶어 혼자 웃었네요. 오늘도 친정엄마 목욕탕 동행, 말랭이 토요행사 등으로 얼굴에 땀 꽤나 흐르고 다니겠군요. 날씨까지 30도가 넘는다 하니, 맘속으로 ‘아고야 개운하네’ 라며 습식 사우나 들어가는 심정으로 도를 닦아야겠습니다. 어제는 여성성을 드러내는 작가들의 책 두 권을 일독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제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입니다. 그녀 앞에는 ‘페미니스트 작가’라는 이름표가 붙는데요, 저는 젠더(gender)를 기준으로 그녀의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극히 솔직하고 담백한 글쓰기재능이 부러워서 자주 그녀의 책 페이지를 넘깁니다. 이어서 천양희 시인의 최근 시집 한 권을 다 읽으며 맘에 드는 부분은 글쓰기 팀들과 공유, 자극을 주기도 했구요. 또 동화그림책 놀이전문가가 오셔서 동화책을 가져가시면서 책방의 뷰도 좋지만 제가 있어서 더 빛이 난다고 말씀해 주셔서 행복했구요.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책방 희망대출 신청 손님’을 맞이한 일이었죠. “월명산 자락에 책방이 있는 줄 몰랐어요. 너무 신기하고 반가워서 희망대출도서를 신청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전화번호를 받고 아침편지얘기를 건네니 받고 싶다 하셨지요. 제 지인이 아닌, 정말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며 책을 전하는 일, 참 행복한 일입니다. 책 <고래>를 가져가셨는데, 어떤 내용인지 나중에라도 그분을 통해 들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오늘은 발바닥에 땀나게 다녀야겠지만, 주름 하나 더 생기더라도 웃는 얼굴로 살아야겠습니다. 천양희 시인의 <그는 낯선곳에서 온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그는 낯선 곳에서 온다 – 천양희(1940-현, 부산)


그가 낯선 곳에서 오는 것은

낯선 풍경이 함께 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산이 웃는다고 쓰고

가지가 찢어지도록 달이 밝다고 쓸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비를 끈이라 쓰고

빗방울 속에 산이 있다고 쓸 수 있었을까


그가 낯선 곳에서 오는 것은

낯선 사람이 함께 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고통은 때로 축복이 된다고 쓰고

가난은 때로 운치가 있다고 쓸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우는 꽃이란 없다고 쓰고

휩쓸리는 낙엽을 쫓기는 여진족 같다고 쓸 수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개미의 행렬을 보고 인생은 덧없다고 쓰고

객기로도 그리워지는 밤이 있다고 쓸 수 있었을까


그가 낯선 곳에서 오는 것은

낯선 삶이 함께 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삶을 그물이라고 쓰고

어떤 죽음은 후련한 삶이라고 쓸 수 있었을까


어느 땐

낯선 바람이 함께 와서

무릎을 땅에 대고

제 속이 검게 썩어가면서도 열매를 맺는

먹감나무를 오래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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