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81

2023.7.8 안차애 <감자>

by 박모니카


쫀득쫀득 찰진 옥수수 맛 같은 따뜻한 손길이 제 발과 다리를 오고 갔네요. 어른들 말씀대로 날씨 탓인지, 아님 노동의 흔적인지 밤새 끙끙거리는 소리에 딸의 손도 애썼겠어요. 발바닥에는 파스도 붙어있구요, 그래도 알아서 새벽 눈이 떠지는 걸 보면 아직은 살 만한가 봅니다. 창밖을 먼저 내 다 보니 비는 오지 않고 어제 캐다 말고 온 감자들이 생각나요. 올해는 다른 이들보다 늦게, 사월 중순에야 감자를 심었었지요. 매년 하지 때 캐던 감자였는데, 늦게 심어서 그런지 감자꽃과 줄기가 시들지 않더군요. 그 위에 무정하게 장마가 찾아온거죠. 일상도 바쁘고 장마비도 바쁘니 언제 감자 캘 시간이 있어야 말이죠. 하지 이후 머릿속엔 온통 감자밭. 제 지인들은 알고 있지요. 감자를 팔아서 무엇을 하려는지... 하여튼 어제 이른 아침,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 솜이불을 쳐다보며 밭으로 갔어요. 비에 젖은 땅, 한 두둑만이라도 열어봐야지. 달린 감자알이 시원찮으면 미련없이 돌아서야지. 그런데 갈퀴질도 하기 전에 희끗거리는 감자얼굴이 보이더군요. 이내 맘이 달라져 사진부터 준비, 손 갈퀴 한 방에 들어 올려진 감자식구들.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도 썩은 것도 별로 없이, 옹기종기 어깨 부등켜앉아 주인 발을 기다렸을 감자들과 만났답니다. 감자를 본 제 욕심이 그냥 있었겠어요? 한 두둑을 앉은걸음으로 다니며, 줄기를 뽑을 때마다 나오는 감자들 덕분에 온몸이 비가 되었답니다. 옆 두둑으로 옮겨가 또 게걸음으로 두둑 결승선까지 열심히 달리는 와중, 비가 오더군요. 두 개의 두둑만을 거두는데도 3시간이라, 결국 비를 핑계대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첫 감자 6상자 수확. 엄마와 남동생들 그리고 절친 지인 몫으로 정했지요. 어부의 딸, 제가 갯벌에서 바지락을 캘 때의 소리에 익숙한데요 난생처음 감자밭에서 감자를 캐는데 바지락 캐는 줄 알았답니다. 진흙땅을 긁는 갈퀴 소리 듣고 나온 감자알. 고슬고슬 부드러운 황토에서 나온 잘생긴 감자도 사줄까말까한데 이 못난 형세를 누구에게 팔겠나 싶어 이내 상품가치를 내려 놓았답니다. ’네가 무슨 밭일을 한다고 새벽부터 나가서 혼자 감자를 캐냐. 김서방이랑 같이 간 줄 알았네, 오메오메‘ 감자를 받으며 그냥 먹을 수 없다고 당신 아들들 감자도 다 사 먹어야 한다고 굳이 감자에 값을 매겨 주셨답니다. 엄마도 아시니까요. 감자 팔아 무엇을 하려는지. 장마비가 오락가락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남은 4두둑의 감자들을 다 보듬어 줘야지요. 얼마나 애타게 기다릴지 저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아마도 감자 이야기, 한번은 더 들려드릴거예요. 오늘은 후배들이 글램핑인가 뭔가에 초대하는데 사실 책방에서 책만보고 뒹굴고 싶은 주말입니다. 안차애시인의 <감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감자 – 안차애(1960-현, 부산)


내 사랑은 심심하지만

알고 보면 깊은 농염이다

내 사랑에 온갖 맛이 들어있다는 건

깊이 다가와 본 사람은 다 안다

춘궁(春窮)이거나

춘궁 같은 허기거나

허기보다 더 아득한 마음일 땐

심심하고 둥근

둥글고 부드러운 내 몸에

당신의 이빨자국을 찍어 보라

당신이 가진 온갖 맛

떫거나 시거나 쓰거나 짠맛, 맛들을

순하고 착하게 껴안아주리

내 살 깊이 품었다가 온전한 농염으로

다시 당신께 돌려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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