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3 안도현 <장마>
깊었던 새벽잠이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랐네요. 어젯밤 산책길이 온통 습기로 축축하더니만 밤새 곳곳마다 천둥번개가 있다는 일기예보의 장담이 틀리지 않았군요. 여름날 장마비도 제 몫이 있을테지 싶어 바라보긴 해도 마음 한켠에 비 때문에 멈춰버린 할 일에 폭폭하기도 하네요.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 시간이 지나가면 ’그랬구나’ 하며 받아들여지겠지요. 어제는 금강하구길을 따라 지나가는데, 금방이라도 툭 터질 먹구름아래 늙은 호박빛 바닷물이 넘실거려서 사진한장 담았답니다. 왠지 이 넘실거리는 물살이 근대 시대 채만식 작가도 보았으리라 생각하면서요. 임피에 있는 채만식 도서관에서 채만식작가의 작품을 강연하는 지인이 있어 가는 길이었거든요. 소설가 백릉 채만식에 붙는 수식어로 대표적인 말, ‘소설 탁류’는 그 배경이 근대군산이어서 근대역사문화지의 얼굴을 내민 군산에서는 첫 번째 문학유산입니다. 극작가라는 명찰을 가진 강연자(김영철, 군산 문인협회)는 채만식 작품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재미있게 하셨습니다. 대표작 소설<탁류> <태평천하> 외에 특별히 채만식의 희곡작품들을 소개하셨는데요, <당랑의 전설> <심봉사> <제향날> 등을 소개하는 그의 강연은 마치 연극 한 편을 보는 듯 재미있고 청중들과의 호흡도 으뜸이었습니다. 더 많은 군산시민이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강연기회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저도 역시 군산사람 채만식작가에 대해 더욱 폭넓은 공부를 해야겠어요. 책방주인일 때와 아닐 때의 문학에 대한 관심방향도 크게 달라졌는데요, 무엇보다 언제나 어디서나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 저절로 스며드는 것 같아서 매일이 새롭습니다. 오후에는 책방 근처에 있는 중학교 여학생 두 명에게 김소월의 시집을 선물했어요. 이 친구들이 시인 김소월의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기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시 들려 드릴께요. 목요일이라 저도 책방에서 문우들의 작품을 합평하는 시간이 있군요.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오늘은 안도현시인의 <장마>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장마 – 안도현(1961-현, 경북예천)
神은 처마 끝에 주렴을 쳐놓고
먹장구름 뒤로 숨었다
빗줄기를 마당에 세워두고
이제, 수렴청정이다
산골짝 오두막에 나는 가난하고 외로운 왕이다
나, 장마비 어깨에 걸치고 언제 한번 철벅철벅 걸어다녀를 봤나
천둥처럼 나무 위에 기어올라가 으악, 소리 한번 질러나 봤나
부엌에서 고추전 부치는 냄새가 올라올 때까지
구름 뒤에 숨은 神이 내려올 때까지
나는 게으르고 게으른 사내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