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37

2023.9.2 윤동주 <길>

by 박모니카

날이 밝았네요. 새벽 세 시에 언뜻 눈을 붙였으니 밤을 꼬박 지샌거나 다름없는 아침입니다. 어젯밤 마무리할 기사가 있었거든요. 지역의 시낭송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는데요, 기사를 낼 때마다 느끼지만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결코 녹녹치 않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특히 상대에 대해 글로 표현해야 할 때 매우 조심스럽고 진실과 예를 갖추어야 하니까요. 저와 동갑이어서 인터뷰할 때도 불편하지 않았구요, 그 멋진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요약하자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네요. 저도 책방을 연 뒤로 시를 더 깊이 알고 낭송까지 궁금해졌습니다. 좋아하는 지인들께서 시낭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서 더욱더 관심을 갖습니다. 시를 읽고 필사 정도에 머무는 저와 달리 낭송을 하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 확실히 시인이 써 내려갔을 그 시에 대한 감정과 마음을 잘 해석하고 체득하는 것 같아요. 소리를 통한 언어와 의미습득은 본성이니까요. 시를 낭송하면 저절로 시인이 낭송가의 몸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수많은 시 중 자기 목소리에 어울리는 시를 선택하는 일이 참 어렵다고 합니다. 저도 평소에 말할 때 목소리와 녹음된 목소리에 큰 차이를 느끼는데요, 인터뷰 때마다 느끼는 건, 목소리를 정돈시켜야겠다는 결심입니다. 좋아하는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면 제 목소리도 맑게 정리정돈 되지 않을까 싶군요. 친정엄마께서 이 새벽에 전화를 주십니다. ’새벽장에 가서 고추 좋은거 나왔는지 보자‘라구요. 시장사람들의 에너지를 받고 올까 합니다. 오늘은 윤동주 시인의 <길>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9.2길1.jpg 낮 길
9.2길2.jpg 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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