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48

2023.9.13 나태주 <천천히 가는 시계>

by 박모니카

<여행의 쓸모>는 ’나를 넘어선 나‘를 만나 위해서 떠나는 거라네요. 정여울 작가의 신간을 읽고 있는데 딸의 톡톡톡.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 있다고 하더군요. 내심 ’참 부럽다‘를 연발하며 책의 일부를 사진으로 보냈더니, ’어서 멀리 떠나와~~‘라고 유혹하네요. 그래요, 말 그대로 유혹이었습니다. 스마일 이모티콘과 함께 마음만 멀리 보냈습니다. 눈 깜짝하면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9월의 달력엔 빨간 휴일이 명절이란 이름표를 달고 진을 치고 있는데, 끝내야 할 일들이 점점 성벽처럼 느껴지네요. 혹자는 말하지요. ’천천히 살아도 살아진다고‘요. 저도 잘 알지요. 알면 행동하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의 성실도‘. 아직은 천천히, 좀 더 느긋하게, 저 만을 보고 살기에는 때가 아닌 듯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할 일이라고 손짓하며 기다리는 일들을 확인합니다. 급식 봉사활동에도 살짝, 신간 에세이를 위한 인터뷰도 살짝. 또 오후에는 본업으로 돌아와 학생들의 지도에도 열중하겠지요. 비록 멀리 가는 여행은 없을지라도, 짬짬이 책 속으로 들어가 이 나라 저 나라 한바퀴 돌고 올 정도의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답니다. 그러니 책보는 일은 좋은 사람 만나는 일 만큼이나즐거운 비명입니다. 비오는 냄새에 창밖을 봅니다. 초가을 저녁 불침번 당번인 귀뚜라미 울음이 많이 가냘퍼졌어요. 그들보다 더 크게 당신의 책 읽는 목소리로 가을을 밝혀보시면 어떨까요.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천천히 가는 시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천천히 가는 시계 – 나태주


천천히, 천천히 가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싶다

수탉이 길게, 길게 울어서

아, 아침 먹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을 하고

뻐꾸기가 재게, 재게 울어서

어, 점심 먹을 때가 지나갔군 느끼게 되고

부엉이가 느리게, 느리게 울어서

으흠, 저녁밥 지을 때가 되었군 깨닫게 되는

새의 울음소리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팔꽃이 피어서

날이 밝은 것을 알고 또

연꽃이 피어서 해가 높이 뜬 것을 알고

분꽃이 피어서 구름 낀 날에도

해가 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꽃의 향기로만 돌아가는 시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가고

시도 쓸 만큼 써보았으니

인제는 나도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 하나쯤 내 몸 속에

기르며 살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