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52

2023.9.17 이남일 <가을의 언어>

by 박모니카


’경계에 서면‘ 이란 말을 실감하는 계절입니다. 보일 듯 말 듯, 아닌 듯 맞는 듯, 가는 듯 오는 듯... 말 그대로 ’~~ 하는 듯‘한 표현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지요. 어느새 팔을 덮은 긴 옷자락 위로 나뭇잎 한두 정도 떨어뜨리는 가을비가 좋은데, 운치 플러스 낭만을 펼치는 가을비 우산속에서 벗들과 계절의 경계를 지나는 재미를 소곤소곤 얘기 나누고 싶은데, 어제 내린 비는 좀 과격했지요. 그래도 할 일 다하며(책방 오픈 후 처음 있는 일, 모 단체에 책을 50권이나 전달하는 기가 막히게 기분 좋은 일) 기분좋게 점심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갈하고 담백한 점심식사(취나물 백반)처럼 함께한 여자들의 맛있는 수다 덕분에 폭우를 뚫고 달리는 운전은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었구요. 저녁식사를 비워둘까 했는데 엄마 생각이 나서 어제 아침 산책길에서 산 고구마순과 가지를 들고 엄마집으로 가면서 전화했지요. “고구마순 무침해서 같이 저녁 드시게요. 동네 할머니들이 직접 길러서 엄청 싱싱해요.” 월명산책길을 걷다보면 마을 할머니들이 고사리, 상추, 가지, 고추, 고구마순 줄기 등을 펼쳐놓고 팔지요. 어제도 껍질 벗긴 고구마순 줄기가 어찌나 싱싱해보이던지, 한 바구니 사려는데, 할머니는 두 분... 사이좋게 파시라고 두 바구니를 샀어요. 곁에 있던 보라색 가지의 매끈한 얼굴을 보며, ’어머니 얼굴만큼이나 이쁘고 고와요.‘라고 했더니, 고구마순 줄기 몇 자락이 더 올라왔어요. ’아이고, 말도 시원시원하게 잘하네‘라는 덕담과 함께요. 이 고구마순을 무쳐서 입맛 없어 안 드실라고 했다는 엄마와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고구마순 줄기 껍집 벗기느라 손톱 밑이 새까만 장사 할머니얘기도 하면서요. “엄마, 늙는 것은 열매가 잘 익어가는 거랑 같다네요. 맛난거 드시면서, 힘든일 하지 말고요. 추석상도 간단히 밥 한끼 먹으면 돼요. 조상들도 엄마 정성 다 알아서 고생하지 말라고 하실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이남일 시인의 <가을의 언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의 언어 – 이남일


느티나무 아래 가을은 또

단풍잎 동화를 쓴다.

밤톨 같은 이야기가 툭툭

풀섶 가득 떨어지고

갈가에 날이 선 찬 서리보다

바람 소리에 휘청대는

코스모스 가는 목이 외롭다.

간밤에 별이 내린 흔적처럼

서리 들녘 지천에 피어나는 들국화

땡볕에 터질 것 같은

밭고랑 속 붉은 고구마의 침묵은

가슴 깊이 감출 수도

무심결에 불쑥 내밀 수도 없는

잘 익은 가을의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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