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58

2023.9.23 정태춘 <시인의 마을>

by 박모니카

어제 말랭이 마을분들의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잘 전해드렸구요. 특히 시 낭송을 한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참 멋있구나. 내가 글방하길 잘했어’ 라고 속으로 뿌듯했습니다. 방송 후 돌아오는 길에 한 어머님의 아들이 전화를 주었습니다. 40대라는 그 아들은 딸보다 더 살갑게 어머니의 방송 모습을 잘 보았다고, ‘우리 엄마 너무 멋지다고’ 하는 칭찬의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식에게 받는 찬사가 최고 아닐까요. 방송출연으로 지난 며칠간 두 분이 겪었을 감정- 두려움, 긴장, 호기심, 도전, 자신감, 설렘, 떨림, 행복감 등 –들은 아마도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감정에 또 하나를 보탠다면 ‘보람’이란 말이지요. 평생 누군가를 가르치는 업을 가져서 그런지, 어머님들의 대본 하나하나에 그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지도하는 일. 제 본업과 함께 할 일이 늘어나 분명 힘들었지만, 방송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참 보람을 느꼈습니다. 경로당에서는 다른 분들이 저희들을 기다리며 맛있는 점심상을 차리셨구요, 식사내내 방송얘기로 꽃을 피우셨네요. 지친 몸으로 책방에 오르는데 팽나무가 너무 자랐군요. 정면에서 보면 책방모습이 보이질 않죠. 작년에는 자라는 팽나무 가지 한 줄, 이파리 한 장도 아까워서 잘라내는 것을 엄청 싫어했어요. 또 팽나무 그늘 공간에서 행사를 하면 그 아름다운 모습이 덤으로 따라왔구요. 생각해보니 올해는 다른 공간에서 행사를 하느라 팽나무 공간의 향연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추석후부터 마을어머님들의 시낭송을 준비, 이 공간에서 시낭송과 함께, 아름다운 10월을 만들어봐야겠어요.

오늘은 정태춘시인의 <시인의 마을>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시인의 마을 – 정태춘


창문을 열고 음-내다봐요

저 높은 곳에 우뚝걸린 깃발 펄럭이며

당신의 텅빈 가슴으로 불어오는 더운 열기의 세찬바람


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

먼 대지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

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오는 숨가쁜 벗들의 말발굽소리


누가 내게 손수건 한장 던져 주리오

내 작은 가슴에 얹져 주리오

누가 내게 탈춤에 장단을 쳐주리오

그 장단에 춤추게 하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 처럼

하늘에 빗긴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오는 소릴 들을테요.


우산을 접고 비 맞아봐요

하늘은 더욱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서

당신의 그늘진 마음에 비뿌리는 젖은 대지의 애틋한 우수


누가내게 다가와서 말 건네 주리오.

내 작은 손 잡아 주리오

누가 내 운명의 길동무 되주리오

걸인시인의 벗 되주리오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 처럼

하늘에 빗긴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오는 소릴 들을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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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364vSFgjS4?si=1YQ8L49oj3VsvH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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