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161

2023.9.26 문병란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

by 박모니카

추석을 맞는 모습은 다양하지요. 어제 자원봉사를 하는 이모님들께서는 소외계층과의 나눔을 위해 튀김류를 엄청나게 준비하셨죠. 아시다시피 튀김음식을 만드는 일은 손이 많이 가죠. 늦게 가서 이미 만들어놓은 튀김만 먹는 저. 밉상일텐데 항상 따뜻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십니다. 어쨌든 이분들의 봉사정신은 글로 표현하기에 송구할 정도라서 음식을 받으시는 분들이 이런 수고로움도 함께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뜻 해봅니다.^^ 사무실의 책상위에 놓여있는 가족달력을 바라봅니다. 2년 전부터 저는 제 가족들의 모습과 글을 써 놓은 달력을 만들었지요. 나이드니 아픈 곳만 늘어난다는 첫째 남동생과의 통화를 하면서 올해는 어떤 모습, 어떤 시와 글로 달력을 만들까 궁리했습니다. 제가 가족달력을 만들면서 지인들에게 많이 권유했습니다. ‘큰돈 드는거 아니고, 무엇보다 부모형제간 좋은 모습을 담는 시간이 참 좋더라’라구요. 오지랖인지는 몰라도 좋은 거라고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서 다 같이 하고 싶거든요. 가족달력에는 기본적으로 가족들의 모든 대소사(생일, 제사, 기념일 등)를 기록하고, 형제들에게 어울리는 시도 한편씩 올려주고, 본인들이 남기고 싶은 말과 사진, 또는 그림도 넣어줍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달력으로 일년을 바라보며 서로를 챙기는 일, 저는 볼때마다 스스로에게 칭찬해줍니다. ‘참 잘했어요’ 이렇게요.^^ 어제도 한 장 한 장 지나간 달을 들춰보며, 부모 형제들과 함께 했던 미소들을 떠올려보았네요. 잠들기 전 생각이 나서 달력에 들어갈 몇몇 시들을 골라놓고 타이핑 치는 손가락을 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지금부터 해갈이를 앞두고 정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 부디 건강히 따라와다오.’ 오늘은 문병한 시인의 <가을의 여백에앉아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의 여백에 앉아서 - 문병란

가을은 먼저

4만 원짜리 횟감 두 접시와

우리들의 단란한 술잔 속에 와서

비린내도 향그러운 가을바다

아침이슬 한 잔씩을 가득 채웠다.


길고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모처럼 하늘이 높고 푸른 날

때마침 제철 만난

남해 바다 전어 떼

그 싱싱한 비린내 속에서

우리들의 눈빛 가득

익어 가는 가을이 주렁주렁 열렸다.

시인은 술보다

은비늘 파닥이는 가을바다에 취하여

코스모스 손짓하는 바닷가 횟집의

풍어의 식탁 앞에 허리띠를 풀고

원고료 없는 시 청탁에 쉽게 응하였다.


일금 5만 원짜리 원고료 대신

그 다섯 배 비싼 점심을 대접받고

가을의 여백에 앉아

우리들은 이미 모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시인이 되어 붉으레 고운 단풍이 들고 있었다.


가을은 취하는 달

그리고 외상으로도 서로 사랑하는 달.

9.26가을.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봄날편지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