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30 이상국 <도둑과 시인>
‘걸으면 더 잘 보여요.’ 시댁 친정 모두 명절 인사드리고 나니 갑자기 심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책방은 휴일이라고 알림을 붙여놓고, 오후 짧은 시간에 어딜 가자니 어설프고요. 그래서 월명산길을 걸었습니다. 낮에 포식했던 욕심도 내려놓을 겸 해서요. 역시나 걷길 잘했다 싶었죠. 지인이 선물해 준 곶감 몇 개 들고, 커피 한잔 들고, 사드락 사드락 이리저리 둘러보면서요. 누군가를 부를까 하다가 오롯이 심심한 혼자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하면서요. 걷다보니, 참 많은 모습이 보이데요. 양념으로 들리는 소리들도 맛있었어요. - 이러저리 알밤찾는 집게, 할머니 굽은 허리같은 꽃무릇, 맨발로 씩씩하게 걸어오는 부녀의 발, 생선구이집 또 가고 싶다는 모녀의 수다, 인구 5만일 때의 식수였다며 공원내 저수지를 설명하는 할아버지와 손녀... 그리고 너무 흔해서 시시하다고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끝까지 잡아보려는 작은 야생풀과 꽃들까지도 보였습니다. 그들을 지나가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글 몇 줄을 메모하기도 했습니다. 걷는 일은 건강한 마음을 만들어주는 참 잘한 일이었습니다. 어젠 하루종일 구름이 두꺼워서 저녁에 달이 보일까 했는데,, 어쨌든 말랭이에는 희미한 얼굴이라도 보였구요. 다른 동 사는 지인이 보내준 달님은 엄청 환하더만... 그래도 두 손으로 두레박 만들고 맘속 소망 꺼내서 보름달님에게 올려보냈죠. 천번쯤 아부멘트도 섞어서요.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 꼭 들어주세요’라구요^^ 그러고도 심심하여, 매일 받고있는 한시 몇 편을 쭉 다시 읽으며 어느시인이 보름달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보았죠. 고려시인 원천석은 ‘은쟁반으로 솟구친 달’ 진화는 ‘표주박으로 푸른 허공 씻은 후 나온 달’, 조선시인 기대승은 <수레바퀴 하나 높이 떴네>, 중국시인 이백은 <봄부터 가을까지 약을 찧고 있는 토끼 사는 곳>이라고 표현했더군요. 현대시인 이상국의 <도둑과 시인>에서는 추석날 들어온 도둑에게 보름달빛 마저도 숨겨주고픈 시인의 마음이 들어있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도둑과 시인 - 이상국
어느 해 추석 앞집에 든 도둑이
내 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던 밤,
감식반이 와서 족적을 뜨고
나는 파출소에 나가 피해자 심문을 받았다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그리고,
하는 일 등을 숨김없이 대답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달려라 도둑」이라는 시를 썼다
들키는 바람에 훔친 것도 없으니까
잡히지 말고 추석 달빛 속으로
그림자처럼 달아나라는 시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경찰서에서 그 사건을 불기소처분한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경찰은 몰라보게 편리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게만큼 찌그러진 차
지붕을 새로 얹는 데 든 만만찮은 수리비에 대하여서는
앞집은 물론 경찰도 전혀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그 시로 원고료를 소소하게 받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미 발표한 시를 물릴 수는 없고
그래서 나는 그 도둑이라도
이 시를 읽어주었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