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2 정일근 <가을이 오면 그대에게 가렵니다>
이 세상 어느 책갈피에 꽃혀질까요. 오늘 가을 새벽의 기억은... 침대 밑 복실이의 코 고는 소리는 이미 사람처럼, 어제의 노곤함을, 노령이 된 육체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언젠가 이 친구도 꽃잎 한 장이 되어 추억의 사진 속에서나 만나볼 수 있겠지 싶어 안쓰럽게 살짝 바라보네요. 딸의 말처럼, 같이 있을 때 말이라도 더 걸어주고, 더 산책하고, 먹고 싶은 거 먹게 해야겠다 싶구요. 그나마 저를 졸졸 따라다녀서 한 걸음이 열 걸음되는 건강을 지키고 있는 듯 합니다. 오늘은 말랭이 글방어머님들 시낭송 중간 검사를 하려 하지요. 어른들 표현에 ‘받아놓은 날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라고 하시더니, 시 낭송하자고 날짜를 정하고, 낭송시를 암송하시라고 과제를 내놓고 나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도 지나가네요. 어떻게 소리내어 연습이라도 하시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행사준비하라고 지인들께서 정성스런 후원금도 주셨습니다. 소위 플래카드도 만들며 잔치다운 마당 한번 열려고 합니다. 고약스럽게 일러바치는 것 같지만 군산시의 문화예술과 관계자 왈, ’시의 행사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 특히 저 개인이 주관하는 행사라고, 1도 지원할 수 없다’ 라고 통보 받았답니다.~~ ^^. 그럴줄 알았지만 그렇다 하니 저도 역시 1분 정도 서운해서 남편에게 뒷담했지요. 그런데 제가 누군가요. ’그 까지것 내가 떡 하나, 꽃 한송이 준비할 여유가 없어서 못할 것이냐? 관심 없으면 말아라. 말로만 문화마을 운운하는 작태들. 그러던지 말던지 나는 마을 공동체의 사랑을 먹었으니 응당 할 일을 하련다.‘하고 추진합니다. 오늘부터 10여 일 사이, 우리 어머님들께서 시낭송을 잘 하시도록 열심히 도와야겠습니다. 행사 끝나고 혹여나 시간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가을여행도 가고 싶군요. 오늘은 정일근 시인의 <가을이 오면 그대에게 가렵니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가을이 오면 그대에게 가렵니다 - 정일근
가을이 오면 기차를 타고
그대에게 가렵니다
낡고 오래된 기차를 타고
그러나 잎 속에 스미는
가을의 향기처럼 연연하게
그대에게 가렵니다
차창으로 무심한 세상은 다가왔다 사라지고
그 간이역에 누구 한사람 나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도
기차표 손에 꼭 잡고 그대에게 가렵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간이 역이
이미 지나쳤는지 몰라도
그대 이미 저를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덜컹 거리는 완행기차를 타고 그대에게 가렵니다
가을이 나뭇잎 하나를 모두 물들이는 무게와 속도로
그대에게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