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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90

2023.10.25 김영춘 <세 시나 네 시쯤>

by 박모니카

연꽃시인의 맑고 밝은 미소를 보았다면 사군자 ’매난국죽‘이라도 제자리를 양보했을걸? 할 정도로 진실한 사람, 안준철시인과 만난 가을저녁은 강연에 참석한 모든이의 마음에 연꽃을 피웠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꿈속에서 만개하였다가 물고기에게 수유하는 아름다운 소멸에 이르도록 향기가 가득했을겁니다. 맛있는 시와 마음을 들려주신 시인께 감사드립니다. 돌아와 이런저런 느낌을 메모한 후 시인께서 추천한 또 다른 시집을 펼쳤습니다. 제목이 하도 다정하여, 또 시집의 작가 미소 역시 다정하여 후다닥 ’시인의 말‘을 읽었답니다. -버릴 수 없으니 품고 가게 되었다. 버릴 수 없었으니 별것도 아닌 것처럼 덤덤하게 적어 갔으면 한다.- 시인이란 매일보던 것도, 하찮게 여겨지는 것도 새롭게 봐야 한다고 하더니, 첫 시 <손목>을 통해 내 손목을 다시 바라보며 그 말의 뜻을 알았습니다. <산책>을 읽으며 ’가을은 조선의 바깥으로까지 길을 낼 수 있음‘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쩌다보니 시집 한권, 60여편의 시를 읽었네요. 보여진 여러 갈래 길에 점 하나씩 찍고 돌아다니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요. 일어나니 새벽 네 시가 살짝 넘었더군요. 할 일이 있어 다섯시 알람으로 맞췄었는데 시 하나를 의식하며 잠든 탓에 더 일찍 일어났나봐요. <세 시나 네 시쯤>에는 제 마음을 대신 해준 싯구들이 많았거든요. 김영춘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다정한 것에 대하여>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시들에게서 ’오호!‘라는 감탄사가 그려진 낙엽들이 당신 발 끝에 떨어질 것입니다. 밟고 지나가지 마시고 꼭 주워서 낙엽 책갈피처럼 끼워두시면 어떨까요...발문에서 복효근시인은 ’생의 가을이 연주하는 다정 변주곡‘이라고 하셨네요. 언젠가 김 시인도 직접 만날 인연이 있겠지 생각하며 오늘의 시를 들려드립니다. 이제 막 부화한(10.10 초판) 시집이니 꼭 읽어보시고 시인의 따뜻한 시선과 사유를 널리 나누시게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세 시나 네 시쯤 – 김영춘


일찌감치 눈이 떠진다

나이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다

가까이 있는 생각들을 더 가까이로 당겨 본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무엇인가를 너무 오래 품고 있어서일 것이다

저만큼으로 내보내기도 한다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것들의

상서로울 리 없는 앞날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잠 못 드는 일이 꼭 괴롭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기에

괜찮다면서 다독여 보기도 한다

밤은 여전히 깊고 바람 끝은 차가웁다

혹시 산속 어디 깊숙한 곳에서

몇 마리의 늙은 산짐승들이

나처럼 일찌감치 깨어나고 있을까

콧기운을 내쉬며 뒤척이고 있을까

저로부터 비롯한 새끼들과

무릇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것들의 앞날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을까

어느 웅크린 날의 세 시나 네 시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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