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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91

2023.10.26 이문재 <이제야 꽃을 든다>

by 박모니카

당신의 이름이 불리워지지 않는 날의 슬픔. 아니 누군가가 강제로 당신의 이름을 어둠 속에 가둬버린 아픔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이태원참사 1주기일입니다. 159명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육간의 영원한 이별이 있었습니다. 곡진한 애도가 넘쳐 흘러도 슬픔과 아픔이 사라질 수 없건만, 이 나라 역사상 합동분향소 최초로 무명으로 남겨진, 위패도 없는 장례식. 1년이 되었건만 희생자를 위해 정부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20대인 제 아이들의 세대들이 세월호 희생으로 하늘나라의 별이 된 후, 전 국민이 가슴에 푸른 멍을 안고 살아가지요. 그런데 지워지지 않은 흉터 위에 또다시 깊은 상처로 그어진 이태원참사. 아직도 그날의 그 현장이 생생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에 찾았을 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이라고 두 손 모았었지요. 또다시 너무도 가까이, 내 아들 딸도 언제든지 갈 수 있었던 그 흔한 거리에서 일어난 믿지 못할 엄청난 사고. ‘도대체 왜!’ 라며 묻고 싶은 말은 많으나 오늘은 가슴 무겁게 내려오는 슬픔을 모아 희생자와 그 가족들만을 위해서 애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분향소 하나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현 정권의 무도함에 항거하는 맘으로 다음 포스터에 동참하셔도 좋겠다 싶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우리가 반드시 익혀야 할 최상의 배움입니다. 글과 시를 사랑하는 지성인으로서 사는 당신께서 보여줄 아름다운 실천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시는 이문재 시인이 이태원 희생자를 위해서 쓴 시 <이제야 꽃을 든다>를 들려드립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이제야 꽃을 든다 – 이문재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애도다

부디 잘 가시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꽃을 든다

부디 잘 사시라

당신의 당신들을 위해 꽃을 든다

부디 잘 살아내야 한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권리와 의무가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꽃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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