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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193

2023.10.31 김정희 <어느 해 가을>

by 박모니카

이문재 시인은 <10월> 이라는 시에서 말했어요. -투명해지려면 노랗게 타올라야 한다/(중략)/결코 가볍지 않은 시월 / 노란 은행잎들이 색과 빛을 벗어던진다- 이 구절을 읽으며 '아, 나도 가벼워지고 싶다’ 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지요. 말랭이 동네글방 진행과 결과에 대하여 유별난 저의 책임감은 분명 무거운 과제였나 봅니다. 행사 이후에도 학원에 돌아와 월말과 월초를 위한 운영을 준비해야 했고, 쉬는 시간마다 행사에 함께 수고해준 분들께 사진 및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을 다 하고 나니 밤 10시. 그제서야 제 가슴 속 노란 은행잎이 투명해지며 색도 빛도 벗어던져 버리더군요. 생전 처음 시낭송무대에 선 어머님들을 위해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참, 말랭이 마을 어른들은 복도 많다' 라고 말한 어느 분의 말씀처럼 복이 넘치는 무대였어요. 예쁜 의자 20개와 덜 예쁜 의자 30여 개를 배치하면서 의자들이 손님을 다 맞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도 했지요. 결론은, 외로운 의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쯤대면 대중 앞에서 시를 낭송하려니 얼마나 떨렸을까요. 바로 옆에 서 있는 제 가슴에도 자석 달린 진동추가 계속 두두두두... 거렸습니다. 완벽한 암송을 기본으로 시가 전하는 감정에 이입되어 낭송을 하는 어머님들. 정말 잘도 하셨어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가르침과 배움이 따로 걸어갈까요? 함께 손잡고 같이 걸어서 서로 성장한 교육의 장. 말랭이 마을 어머님들이 증거입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오늘도 짧은 여행이 있네요. 함께 공부하는 문우들께서 전주도서관 기행을 하고 싶다고... 저는 여러 번 가보았기에 이번에도 투어가이드 합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감성’ 하나만 따와도 좋으니까요. 하루 더 길다고 넓게 제 품을 내어준 10월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번, 뽀뽀한번 진하게 해주시면 어떨까요...^^ 오늘은 말랭이 동네글방 시와 그림책 공부를 지도해준 김정희 시인의 시 <어느 해 가을>을 들려드려요. 봄날의 산책 모니카


어느 해 가을 - 김정희


초가을 햇살이고

창호지 문 바르는 아버지 곁에서

사락사락 바람과 볕이 노니는 오후


마당에서 씨를 익히던 노란 탱자

꽃망울 조롱조롱 매단 국화 무더기 속으로

황급히 구르고,

시름없이 청대추 떨어뜨리며 오는 가을


추석 무렵 대추 따는 손 붉다

오래 바람 거둔 손


새벽 찬 이슬 맞으며 걷던 밭고랑 사이로

아버지의 세월 달아났다


더디게 말라가는 문살 위로 드나들던

통통통, 햇살 소리


흰빛으로 쓸리는 바람

문풍지 우는 소리로 듣는다

안준철시인의 사진작품
최고령 김방자 어머님(86세) 낭송리허설 <먼 훗날-김소월>
오승자어머님(80세) 낭송후 <사랑하는 까닭-한용운>
김정엽어미님(76세) 낭송 중 <꽃 - 김춘수>
2등상, 김정자어머님(81세) <가을편지 - 고은>
1등상, 최흥자어머님(76세) <개여울 -김소월>
시낭송을 빛내주신 가야금 양정례 병창
시낭송 찬조출연 채영숙낭송가 (한국시낭송예술원 군산지부 회장)
시낭송에 참가한 글방 어머님들
시낭송행사에 와주신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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