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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20

2023.11.25 곽재구 <파란 가을의 시>

by 박모니카


’난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새벽부터 이문세의 노래 <소녀>를 들으면 글을 씁니다. 어제 보았던 은파호수의 풍경, 찻집의 은행나무 풍경이 이 새벽에도 아른거리네요. 눈발이 날리던 호수를 앞 섶에 품고 지인들과 점심을 먹었죠. 공통의 주제 ‘사진이야기’는 이내 사람의 거리를 더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그림까지 욕심이 생기지만 그 분야가 너무 어려워, 조금 더 잘할 수 있고 재밌는 취미, 사진찍기가 제 맘을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카메라 하나만으로 저와 한 몸을 이루며 어디든지 다닐 수 있구요, 바로 바로 기록까지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물론 아무리 사진을 잘 찍는다 해도 살아있는 자연의 숨소리까지 어찌 낚아챌 수가 있을까요. 하지만 시경에 나오는 가장 생동감있는 모습, 연비여천 어약우연(鳶飛戾天魚躍于淵) 이라. 솔개가 날아서 하늘로 오르고,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오르는 그런 장면을 사진에 담을 수 있다면... 생각만해도 정말 짜릿하고 황홀한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꾸준히 하다보면 그 또한 이루어질 날이 있겠지요. 저의 이런 욕심으로 며칠 전 문우들께 Photo Poem 한 작품씩 내시라고 일주일간의 시간을 드렸더니, 부지런한 그녀들은 벌써부터 과제방에 사진 시를 올리는군요. 저도 오늘 살짝 외출하여 작품 한 점 낚아올까합니다. 어디로 갈까, 아직 미정이지만, 어딜가나 순간의 아름다움이 분명 있겠지요. 작은 무생물까지도 다 존재의 이유가 있으니, 부족한 시력에 원기를 충전하고 잘 바라보고 찍어보겠습니다.^^ 오늘은 곽재구 시인의<파란 가을의 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파란 가을의 시 – 곽재구

가을에는

먼 길을 걷습니다

파란 하늘을 보며 걷고

파란 강물을 따라 걷고

언덕 위의 파란 바람을 따라 걷습니다

가을에는

마주치는 이의 얼굴도 파랗습니다

염소를 몰고 가는 할머니의 주름살도 파랗고

계란이 왔어요 번개탄이 왔어요

장돌림 봉고차의 스피커 목소리도 파랗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잠시 눈인사를 나눈 우편 배달부의 가방 안에

파란 편지와 파란 파도소리가 가득 담겨있지요


가을에는

먼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걷다가 파란 하늘을 만나면

파란 나무를 사랑하고

파란 뭉게구름을 만나면

파란 뭉게구름을 사랑하고

파란 거미줄과 파란 달빛을 만나도

금새 사랑에 빠지지요


아, 저기

파란 징검다리 위로

파란 얼굴의 가을의 신이 건너오고 있습니다

그에게 파란 가을의 시를 들려주기 위해

나 또한 징검다리 위로

파란 바람처럼 건너갑니다

은파호수의 늦가을, 파란 가을
어딘가에 누군가 숨어있네요~~
짙노란 둥근 달 같은 은행얼굴, 일년을 기다렸건만 지난 밤 바람에 한 쪽 얼굴에 주름만 가득...
투명한 점심... 더 투명하고 맑은 사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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