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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19

2023.11.24 이성선 <서 있으면서 가는 나무>

by 박모니카

방벽에 기대어 앉아 일부러 찬 기운이 들도록 눈을 감고 잠시 있었네요. 강추위가 시작된다고 출근 옷차림을 따뜻하게 하라는데, 제 머릿속에는 은행나무 한 그루만 걱정되는군요. 어제 따뜻했던 날씨에 ’아, 드디어 주말엔 예쁜 색을 볼 수 있겠구나. 혼자라도 꼭 커피한잔 들고 나무 아래 은행잎 비 한번 맞아봐야지.‘ 했답니다. 그런데 지난밤 세찬 바람에 어찌 되었을까요. 날이 밝으면 책방 출근길에 눈 인사 해야겠어요. 어제는 모 중학교 진로코칭수업.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으로 시작한 학생들의 진로탐색과정 중 하나죠. 이 활동지도도 벌써 시간 꽤나 흘렀군요. 올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1 학생들 대상, 3시간 연강을 했는데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진로란, 진로를 결정하는 요소들, 지능이란, 또 다중지능이란, 장래 희망하는 직업은... 등등의 얘기를 나누느라요. 제 이름을 소개할 때는 늘 질문받지요. “박모니카? 실명이예요? 본 직업은 음악선생님 이예요? 하모니카 잘 불어요?“ 중1학생보다 아주 쬐끔 구사하는 영어 능력이 학생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인가봐요. 게다가 책방주인이란 말에 더욱더 눈이 커졌죠. ’진로(進路)‘ 두 한자어의 뜻을 대답하는 학생,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을 영어로 대답하는 학생 등,,, 저야말로 깜짝놀랐네요. 학생들의 적극적인 대답과 집중하는 수업태도 덕분에 제가 힐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관하셨던 담임께서, ”선생님, 아이들이 재밌게 수업했네요...“라고 해주셔서 ’이 정도쯤은 기본이지, 명색이 아이들을 만난 지 수 십년인데~~‘라고 제 속으로만 셀프칭찬했지요. 하여튼 저는 누군가를 가르칠 때 최대의 에너지가 발산되는 듯 지치지도 않아요. 그것은 온전히 제 삶의 또 다른 토양분이 되구요. 아무리 강한 비바람이 오더라도 자연은 쉬지 않고 성실하게 순환하듯, 오늘 하루, 당신께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색을 빛내며 살아가시길! 오늘은 이성선시인의 <서 있으면서 가는 나무>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서 있으면서 가는 나무 - 이성선

땅에 누운 것들은 모두 싱싱해진다

썩을수록 무無 가까이서 맑아진다


잎 떨어진 가지 사이로 보니

구름이 산을 밟았구나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구나


구름 밟은 산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나무

저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누구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어디로 가고 있는 나무다


서 있으면서 가고 있는 산

풀잎도 여기 앉아서 구름 냄새가 난다

내가 죽으면

어떤 냄새가 날까

나뭇잎 떨어져 햇살에

몸 말리는 냄새?

무재시인의 사진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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