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일정표에 써있던 메모들이 갑자기 사라진 날. 1년 내내 오색현란한 색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무슨 일들을 그리도 많이 써 놓았는지, 빼곡했는데... 갑자기 흰 바탕이 가득했어요. 동시에 제 머리도 하얘졌지요. 완전한 방전 신호를 일부러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이제 좀 쉬라고요. 그런데 쉬는 쪽에 마음이 기울긴 커녕, 하루종일 불안한 마음을 움켜잡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흔들거리니 보이는 글자들까지도 자꾸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구요. 어디론가 완벽히 고요한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혹시나 선약한 것을 실수할까 봐 몇몇 지인들에게 무슨 행사나 약속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다시 일정표에 기록하며 어제를 보냈네요. 옛말에 ’이무위용(以無爲用)’이라, 모든 사물은 비어있어야 가치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제가 그 이치를 알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릇은 건재하되 담길 내용에는 빈 공간을 두는 일,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기억을 잊는다는 것, 참으로 두려운 일... 그런 날이 언젠가 올 수 있겠지요. 잊을 것이 두려워 다른 곳에 메모를 해 놓아도 그 사실마저도 잊는 날이 올 수 있겠지요. 어느 날 세상일을 차츰 차츰 잊는 시간이 다가온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들만은 오래토록 기억할 수 있는 공간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도종환시인의 <새벽을 기다리며>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