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상처한번 받지 않고 사람은 없겠지요. 상처를 너머 평생 가슴에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일도 있구요. 제 학원생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 이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먼 옛날처럼 느껴집니다. 이토록 빨리 세상일이 지나갈까요. 12월 달력 한 장에 씌여진 숫자 하나하나에 꾹꾹눌러 새기는 순간순간의 이성과 감성. 아마도 올해 한 해 살아온 흔적이라도 남기려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일부터 아침편지 발송을 전면 멈추고 브런치에만 올리고 있는데요, 뭔가 이상하다고 어제도 전화를 주신 분이 계셔서 상황을 말씀드렸네요. 매너리즘에 빠진 편지에 새로움을 넣을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사실 산다는 것이 다 같은 모양인데,, 새 맘으로 새로운 것을 이끈다는 것도 별 반 차이가 없을텐데, 어느 마음에 갇혀 탈출을 시도하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합니다. 어제 미사에서는 그런 제 감정을 고백하니 ‘욕심’이라는 두 단어가 지나가더군요. ‘청산은 나를 보고 욕심없이 살라하네‘를 겉으로 아무리 외워도 그 마음이 본모습으로 앉아 있질 못하는 것이 진실인가봐요. 욕심없다 하면 삶의 열정도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진심인가봐요. 어쨌든 12월엔 제 몸에 붙어있던 잎들과 심지어 가지들도 떨어뜨리는 나무의 결단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온전히 간절한 진심으로만 된 이불 한 점이 저를 감싸줄 수 있도록 더 큰 침묵의 고요를 찾아서요. 김인 시인의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혹여나 이 시를 두고 다른 해석마세요~~. 인디언의 노래말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삶이 결국 같음을, 그래서 새벽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또다른 자아의 노크소리에 대답할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