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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35

2023.12.10 곽재구 <겨울의 춤>

by 박모니카

오늘은 김장하는 날. 제가 하냐구요? 창피하게도 저는 엄마와 동생들이 담아줄 김장만 들고 오겠지요. 김장을 하루 만에 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손 한번 거들지 못했는데, ’김치통 들고 아침 일찍 건너오거라. 그리고 새우젓 받은 거 있다면서 수육보쌈이랑 겉절이에 쓰게 꼭 챙기고.‘ 라는 엄마의 전화가 새벽을 깨웁니다. 최근 3-4년 사이, ’이번만 하고 안 할란다. 이번 김장이 끝이다.‘ 를 말씀하셨지만, 해마다 엄마의 김장은 쉬지 않습니다. 김장 전후 엄마의 ’오메 오메‘소리를 수백 번 들어도 ’아, 저 소리가 멈추면 안되지...‘라며 형제들은 조릅니다. ’엄마 김치 아니면 못 먹어요.‘라구요. 하여튼 오늘은 김장잔치를 하는 날, 어부이셨던 울 아버지, 고깃배 식구들이 겨우내 먹을 최고의 음식이었던 울엄마 김장김치. 어느 겨울날 배추 2000여 포기로 골목길을 다 채우고, 동네 사람들이 며칠 동안 김장을 도와줄때,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려와 빨간 양념통으로 스스르 빨려 들어가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겠지만 배추도 기껏 100포기 밖에 안 되지만, 마음만은 그 시절을 생각하며 한바탕 소란에 장단을 맞출 우리 형제들. 생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아, 오늘은 영상하나 첨부할께요. 올봄 3월에 군산시에서 찍어간 인터뷰인데요, 저도 어제 처음 보았습니다. 말랭이 입주 2년간의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새 입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았네요. 10여 개월 전의 모습인데, 왠지 더 젊어보이는 것은 지금의 제 모습이 더 익었다는 것이겠지요^^. 어젯밤 안개가 짙어서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더군요. 오늘 날씨도 포근할거라 하니 가벼운 산책으로 건강을 저축하는 휴일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곽재구 시인의 <겨울의 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겨울의 춤 -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겠다

그리고 춤을 익혀야겠다

바람에 들판의 갈대들이 서걱이듯

새들의 목소리가 숲속에 흩날리듯

낙엽 아래 시냇물이 노래하듯

차갑고도 빛나는 겨울의 춤을 익혀야겠다

바라보면 세상은 아름다운 곳

뜨거운 사랑과 노동과 혁명과 감동이

함께 어울려 새 세상의 진보를 꿈꾸는 곳

끌어안으면 겨울은 오히려 따뜻한 것

한 칸 구들의 온기와 희망으로

식구들의 긴 겨울잠을 덥힐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채찍처럼 달려드는

겨울의 추억은 소중한 것

쓰리고 아프고 멍들고 얼얼한

겨울의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

첫눈이 내리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열어젖혀야겠다

죽은 새소리 뒹구는 들판에서

새봄을 기다리는

초록빛 춤을 추어야겠다

책방 담벼락 넝쿨사이 피어난 세송이 소국
지역국회의원 김의겸 출간회무대-조국 최강욱, 배우 김응수 님의 소담소담


https://youtu.be/DUg_HumQK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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