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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34

2023.12.9 채전석 <계절의 길목에서>

by 박모니카

요즘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 저는 참 좋은데요. 동 계절로 들어갈 문을 아직도 찾지 못했는지 푸른 잎이 너울거리는 나무들, 심지어 개나리, 철쭉이 보이기도 하네요. 어느 날 갑자기 호되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 어쩌려고 저러나 싶기도 하더군요. 하긴 꽃잎 한 장도 계절을 건너가는 힘은 오히려 나보다 낫지 싶어요.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이니까요. 그래도 이쯤 되니 흰 눈이 보고 싶네요^^ 오늘은 참석하고 싶은 몇몇 행사들이 있어요. <디케의 눈물> 조국작가가 군산에 온다하니, 저도 얼굴한번 보구 싶구요. 또 책방의 글쓰기팀을 지도해주신, 시인 전재복 선생님이 수상하는 신무문학상 시상식에도 가보려해요. 연말이면 각종 단체에서 한해동안 수고한 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각종 행사가 많지요. 세밑을 바라보며 일력(日曆) 한 장씩 떼어내는 12월의 당신. 그 어느 누가 수고하지 않았다고 말할까요. 열심히 살고 있는 당신의 삶들은 상금, 상장으로 가늠할 수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이라는 실체에 살짝 기웃거린다면 저라도 준비해서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상장에는 봄 여름 가을 내내 웃고 있는 당신의 얼굴도 담아드리고 싶구요. 얼굴? 하니 생각나는 일, 친정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무료사진촬영이라는 혹한 문구에 잡혀 찍었는데, 지나친 가격으로 마음의 상처를 주더군요. 여차여차해서 기본적인 형태만 구매하기로 결정했지요. 바로 엄마 얼굴이 있어서요. 평생 처음 입었던 하얀 드레스의 당신모습.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제 마음을 상술이 알아본 것이지요. 괘씸했지만 외식 몇 번 줄이면 된다 생각하고 엄마사진액자를 주문했답니다. 어부마님 울 엄마에게 상장으로 드릴거예요. 토요일인 오늘, ’하루‘라는 시간이 상장인 우리들 세상. 저와 함께 받으러 가시게요. 오늘은 채전석 시인의 <계절의 길목에서>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계절의 길목에서 - 채 전 석


바람은 홀로 오지도

홀로 가지도 않았다

꽃향기 무게만으로 힘에 겨운 가지들이

비명을 질러대는 저녁

정거장 없는 길을 다니는 바람의 채근에

더는 버티지 못한 가지 끝에선

눈송이 같은 꽃잎이 울음으로 떨어진다


소리 없는 이별은 또 얼마나 아픈 것이냐

떠나는 것들은 왜 그림자조차

남겨놓지 않는 것인지

내일이면 거짓이 될 하얗게

피었던 꽃들이 떠나면

그늘이 없어진 새들은

어린 잎새를 물고 와 그늘을 만들 것이다


밤새 소리 잠들고

먼 곳 여울물 달빛 싣고 흐르는데

꽃들이 떠나버린 나무는

말 배우고 나서 잊어버린 언어를

젖은 음성으로 중얼거리고

하늘은 온통 별들의 촛불을 켜고

꽃들이 가는 길을 밝혀 주었다


나는 슬픔에 잠긴 나무가 따라갈까 봐

꼬박 밤을 새워 지켰다

아무도 몰래 꽃잎 한 장 일기장에 끼우고

잊어버린 언어를 기억하려 애쓰다가

떠나간 꽃들의 행방이 궁금하였다

꽃잎 지던 어느 봄날 떠나버린 그 사람이 궁금하였다


달이 가는 소리가 그칠 즈음

끝내 봄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짐승의 울음 같은

일기장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안준철시인 사진작품, 전주천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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