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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54

2023.12.29 안도현 <열심히 산다는 것은>

by 박모니카

어디선가 물방울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 고요한 새벽에 파문처럼 들려옵니다. 복실이의 코 고는 소리도 예사롭지 않구요. 어느새 이 친구도 14살(사람나이로 거의 백수)이니, 저의 하루가 복실이에게 약 두달 여... 웅크리고 자면서 잠꼬대하고, 코 고는 행위를 이 고요 속에서 바라보네요. 오늘따라 더 안스러워 보여서요. 잠시 후면 친정엄마와 목욕여행을 가야하기에 저절로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오늘부터 며칠간 학원방학인데요, 아직도 끝내지 못한 학원사무를 차분히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어제 학생들에게 방학을 공지하면서 오늘이 무슨 날일까요? 라고 물으며 자답하기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라고 말하며 간식을 나눴답니다. 방학인사로 ‘Happy New Year’를 합창하며 금주간 수업을 마무리했지요. 특별한 의미의 꼬리표를 달아놓자면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 당신께서는 무엇을 더 하고 싶으신가요. 특별함이 극히 주관적일지라도 그래도 오늘이란 시간 속에 뭔가를 그려넣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도 제 동그라미 속에 그림 하나 넣었답니다. 새해 소망하나 매달린 날개도 그렸어요. 일년동안의 수고함에 위로를 허락하는 표식을 단 날개... 훨훨 푸른 하늘로 날 수 있는 날개를요. 오늘부터 카운트다운 3일, 오늘이 가기 전에 가장 먼저 당신 자신에게 선물을 주세요. ’올해도 잘 살았어. 함께 잘 살았어.‘라고 위로의 토닥임을 주세요. 삼일 전 무료급식 자원봉사현장에서 한 노인이 넘어져서 119가 올 때까지 말동무를 하며 들었던 말 ’잘 살아왔는데...이런‘ 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는 삶, 하지만 누구나 다시 설 수 있는 삶이 또 기다려지는 새벽입니다. 오늘은 안도현시인의 <열심히 산다는 것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열심히 산다는 것은 – 안도현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개만 회수권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업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오수에 도착할 때까지

훈계하면, 응수하고

훈계하면, 응수하고


됐습니다

오수까지 다 왔으니

운전사도, 할머니도, 나도, 다왔으니

모두 열심히 살았으니

* 사진은 모두 안준철 시인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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