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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66

2024.1.10 정호승<시간의 뿌리>

by 박모니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랫가사를 ‘저 푸른 바다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바꿔봅니다. 사실 저는 물욕이 없는 편에 속하는 아줌마. 묵주 반지 제외하고 흔한 장신구도 없고, 옷, 신발 등 가능하면 오래오래 사용하지요. 친정엄마는 가끔, “돈 벌어서 뭐하냐. 원장답게 좀 입고 써라.” 소위 치장을 안 하는 타고난 성격이 답답하셔서 그럴거예요. 집도 평수, 낡음이 중요하지 않고, 차도 크기, 브랜드, 기능 등이 중요하지 않구요. 그냥 제 한 몸이 사는데 덜 불편하면 좋고 살아져요. 다만 나이 들수록 집의 배경이 저를 자극하네요. 텃밭농사 지을 때는 푸른 초원만 보고 다녔는데, 책방과 학원으로 일에 치어 산 지난 2년 동안 농사가 힘들어졌어요. 이제는 그런 일 안하고 푸른바다만 보이는 곳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요. 하긴 그곳에서도 저는 뭔가를 하고 있을거라고 다들 얘기하시죠.^^ 어제도 고등학생과 대학진학 얘기를 했는데요, 매년 자신의 희망사항이 달라져서 걱정이라구요. “얼마나 건강한 생각이니. 희망사항이 매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너가 꿈꾸는 세상이 아름답고 너의 에너지가 넘친다는 증거이고만. 샘은 매일 매일 뭔가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는데. 알고 있는 영어단어도 줄어들고, 하고 싶은 일들도 줄어들고 그래. 마음이라도 가득했으면 좋겠다 생각할 때가 많아. 너희들 수능문제 풀면서 ‘다시 한번 해볼까?’하는 엄청 무모한 생각으로 웃기도 하고.” 라고 말하면서 학생과 잠깐 놀았답니다. 학생들과의 얘기에 가장 솔직한 제가 보이곤 하지요. 오늘은 저의 애마, 차의 여러 곳을 살피는 날. 차 없이 천천히 살아볼까 해요. 마침 무료급식센터 봉사활동도 있으니 그곳에서 한 손이라도 내어주는 시간도 갖고요. 오늘은 정호승시인의 <시간의 뿌리>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시간의 뿌리 – 정호승

시계가 멈춘 것을 사람들은 때때로

시간이 멈춘 것으로 여긴다

어느 날 갑자기 시계의 초침이 멈춘 것을

시간이 멈춘 것이라고 여기고 기뻐한다

시간은 멈추지도 고장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는다

시간의 뿌리는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뻗어나갈 뿐이다

땅속으로 때로는 지상으로

천국으로 때로는 지옥으로 거대한 뿌리를 드러낸 채

영원히 시간의 나무로 스스로 존재할 뿐이다

강진 다산초당을 올라가다보면

지상으로 뻗어나온 시간의 뿌리를 만날 수 있다

나뭇가지처럼 쭉쭉 뻗어나온 소나무 뿌리를

힘껏 밟고 올라갈 때마다

시간의 뿌리가 얼마나 강인한 아름다움인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밟고 올라가도

시간의 뿌리는 썩지도 울지도 소리치지도 않는다

사랑과 고통의 뿌리로

절망과 희망의 뿌리로 영원히 뻗어나가

시간의 나무로 자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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