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봄날편지277

2024.1.21 한용운 <인연>

by 박모니카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오는 덕분에 지인들과 실내에서 머물며 얘기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조상과 제사에 대한 본질과 형식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주고 받았지요. 이 세상 어느 나라든지 고유의 문화 속에서 우린 살아갑니다. 태어나면서 습득된 문화는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과 같은 것이지요. 그 양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사유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생각의 그물을 짜 나가며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문화형성이 멋지게 보인다 할지라도 바탕이 되었던 그물코없이 세워지는 장막은 없지요. 다행히도 이 나이쯤 먹고보면, 서로 다른 생각에도 완충지점이 곳곳에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느끼는 것은 우리 고유의 정체성인 제사문화를 우상숭배화 하는 타 종교들의 시선은 여전히 마음 아픈 일입니다. 공자의 제자 중 ‘재아’는 늘 튀는 생각으로 많이 질책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부모가 돌아가신 후 삼년상이 너무 길으니 일년 상만 하자고 했답니다. 이때 공자왈, ‘자식이 태어나서 최소 3년은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난다.’라며 불인(不仁)이라며 또 혼났다고 합니다. 요즘 세상은 심지어 삼오제도 사라지니 제사의 형식을 운운하는 제가 완전 꼰대같다고 말해도 할말은 없지만 저는 우리의 오랜 전통 중 꼭 지키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제 부모를 포함한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입니다. 본질을 경시한 형식도 안타깝고, 형식을 떠난 본질도 안타까운 일. 그 둘의 조화가 상존하는 세상이면 더욱더 좋겠다 생각했지요. 감기기운이 아직도 남아서인지 어제 마셨던, 잘 고아진 보약 같았던 대추차가 그리워지네요. 편안한 주일 맞으세요. 오늘은 한용운 시인의 <인연>입니다. 봄날의산책 모니카


인연 – 한용운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리입니다.

잊어야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땐 잊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 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그 만큼 그 사람을 못 잊는 것이요

그 만큼 그 사람과 사랑했다는 것이요.

그러나 알 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초이며 이별의 시달림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가다가 달려오면

사랑하니 잡아달라는 것이요

가다가 멈추면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것이요

뛰다가 전봇대에 기대어 울면

오직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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