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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08. 2023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흥미롭다

- 에드워드 호퍼와 원계홍, 예술과 인생 이야기

웃지 않는 남자 호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4.20~8.20,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적인 측면에서 호퍼를 알게 됐다. 한 마디로 까칠하고 괴팍한 남자다.


호퍼는 엄격한 침례교 전통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가부장적인 분위기 탓인지 고집스럽고 과묵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10대 초반엔 190cm를 훌쩍 넘는 큰 키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1907년 파리 시절의 착실남 호퍼. 술과 낭만의 거리 몽마르트 근처엔 얼씬도 안하고 미술 열공만 했다고 한다.


미술학교 동문으로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던 아내 조세핀과의 관계가 참 흥미롭다. 마흔 넘어 결혼했지만 성격 차이로 다툼이 잦았고 심지어 폭력적으로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평생의 반려이자 뮤즈이자 거의 유일한 여성모델이었다.


1947년경 호퍼 부부('웃지 않고 딴 데 보는 남자' 호퍼와 미소 띤 부인 조세핀)


호퍼는 주변인이나 아내와의 불화를 예술이라는 출구를 통해 표출하지 않았을까. 그런 그의 복합적인 내면이 '불안과 고독'의 작가로 이어진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는 미국의 도시 풍경을 그렸으나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과 창조의 세계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아 표현했다.  


             

예술이란 늘 긍정의 작업


원계홍(元桂泓, 1923~1980)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 전시가 열렸다(3.16~6.4, 성곡미술관). 주로 도시풍경을 그린 데다 비슷한 시기의 전시회 탓인지 '한국의 호퍼'라고도 불린다. 1940년대 초 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가 미술로 방향을 전환한 후 평생을 그림작업에 몰두했다. 1978년 나이 55세에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1980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다.


야외에서 작업 중인 원계홍


원계홍의 삶은 고독한 예술가의 어떤 전형을 떠올린다. 부친의 뜻에 반해 화가의 길로 갔고 가장이란 책임감과 생활인으로서 궁핍함, 비타협적인 성격 속에서 묵묵히 한 길을 걸었다. 말년엔 물려받은 과수원까지 팔았다고 한다. '그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일만큼 고단했지만, <작가노트>에서 그는 "예술이란 항상 일종의 긍정의 작업"이어서 "인간의 숙명이 가지는 의의를 단호히 주장해야 한다."라고 썼다.


원계홍의 <수색역> (1979)


원계홍의 작품은 1970년대 말 작업한 골목 풍경 연작이 눈길을 끈다. 개발시대 이전 서울 변두리의 뒷골목을 단순하고 정연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림 속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번잡한 것을 싫어해 인적이 드문 새벽에 작품 스케치를 나갔다고 한다. 세잔과 칸딘스키 같은 작가를 좋아해 집요할 정도로 집의 원형과 본질을 탐구했다. 작품마다 원형질의 감정, 근원적인 그리움이 느껴진다.  



역동적이거나 스며들거나     


두 작가의 대비되는 작품을 살펴보자.

호퍼의 <밤의 그림자>, 1921, 에칭


호퍼는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 30대 중반 이후에 판화 기법의 에칭을 제작하면서 도시 풍경과 인물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데 눈을 뜬다. <밤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강렬함이 느껴진다. 역동적인 구도 속에서 긴장과 몰입감으로 빠져든다. 실제로 알프레드 히치콕, 빔 벤더스, 데이비드 린치 같은 거장들이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원계홍의 <보안등이 보이는 풍경>, 1978, 캔버스에 유채


원계홍의 <보안등이 보이는 풍경>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집과 거리는 단순하고 본질적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우리는 어떤 상상에 빠져든다. 언젠가 여기를 지나간 사람들, 날이 밝으면 다시 누군가가 오가지 않을까.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순간이다. 부재의 빈 공간은 오히려 존재와 추억을 소환하기 마련이다.   



인생의 진실은 흥미롭다


<인생의 역사> (2022)에서 신형철은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흥미롭다. 이 진실에 충분히 섬세한 작품을 선호한다."라고 하면서 "인생에 대해 별말을 해주지 않는 작품까지 읽을 여유가 없다."라고 말한다.


호퍼와 원계홍의 전시를 보면서 작품이 말하는 의미를 곱씹어보게 된다. 자연스레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친다. 그림에서 '사람 사는 일'의 의미를 읽고 그 작가의 인생에서 다시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작가와 작품이 따로 갈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괴팍한 삶을 살았지만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는 두 작가를 만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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