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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Jul 22. 2023

무거운 인생 가벼운 인생

무거운 미술 가벼운 미술


요즘 도서관에서 열공 중이다. 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관의 모범 학생이 됐다. 평소에 듣고 싶었던 좋은 강의들이 많아서 골라서 들어야 할 지경이다. 약간 어려울 것 같은 현대 미술 강의는 의외로 열띤 분위기에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 높아서 놀랐다.


미술은 무엇인가. <다공예술> (2020)의 저자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는 미술은 우리 삶에 의미를 제공할 때 존재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무거운 미술’과 ‘가벼운 미술’을 말한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절대적 예술성을 추구하는 '무거운 미술'은 가고, 삶의 경험을 표현하는 '가벼운 미술'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갈수록 내 삶과 관계있는 미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과 종교에서 지상의 사람으로


며칠 전에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는 중세 이후 500여 년의 세월을 압축해서 보여주면서, 미술의 역사란 한마디로 하늘의 신과 종교에서 지상의 사람으로 내려오는 변천 과정이라고 말한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의 시선이 들어간 초상화와 일상생활을 그린 그림, 풍경화가 두드러지는 건 우리의 삶 가까이로 예술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중세의 무겁고 엄숙한 미술을 내려놓고 인간이 만나는 진정한 세계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화가는 그의 마음과 손에 세계를 담고 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런 흐름을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그림을 꼽는다면 17C 네덜란드 회화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최애 그림들이다. 해상 무역을 주도하며 성장한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함께 중산층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부상한다. 먹고살만해지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관계되는 그림으로 집을 꾸미는 데 눈길을 돌리게 된다. 이 시대의 대표적 화가에 속하는 얀 스테인은 특히 일상의 삶을 익살스럽게 묘사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일단 보기만 해도 즐겁고 유쾌하다. 그림을 보자.


얀 스테인의 <여관> 1665~70년경. 화가는 고향인 레이던에서 여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술에 취해 여관 주인의 치마를 붙들고 있는 불콰한 남자는 다름 아닌 화가 자신이다. 다른 유명인들과 달리 화가가 좋은 점 중 하나는 '남들이 얼굴을 잘 모르는 것'이라는데 얀 스테인은 대놓고 자기 얼굴을 만천하에 디스하고 있다. 참 솔직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가식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자신감이나 자존감이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실제 네덜란드는 실용적이고 포용적인 나라로 유명하다. 동성애, 낙태, 매춘, 마약 등 지구상의 모든 금기에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림 곳곳에는 다양한 성적 코드와 암시가 들어있어 풍자와 함께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하거든요'라는 교훈도 던져준다. 은근짜 한 남자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은데, 깨진 달걀은 잃어버린 순결을, 홍합 껍데기는 정력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진정 관심을 끄는 건 일상의 인간


전시를 소개하는데 인상주의 그림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상주의가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화가의 강렬한 시선이 담긴 주제를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 그림 속의 배경은 대개 도시화된 우리 주변의 지나치기 쉬운 풍경이다. 거기에 인간의 내면이 담긴 삶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특히 최고의 인기인 반 고흐는 인간의 영혼을 집요하게 그림 속에 담으려고 했다.


"나는 대성당보다 사람들의 눈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단다.
사람의 눈에는 장엄한 대성당에는 없는 뭔가가 존재하거든.
진정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거지나 거리의 여자일지라도,
인간의 영혼이란다."

-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885년 11월)


인상주의 전시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인상파들과 어울리며 큰 형님처럼 지냈던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은 평범한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림의 배경은 극장식 카바레 같은 주점, 주인공은 일하는 여종업원이다. 잔을 여러 개 들고도 맥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숙달된 조교처럼' 서빙하는 모습은 소박하지만 진지하다.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한 장면이 이렇게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게 예술의 힘 아닐까.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1878~90년경.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바람처럼 가벼운 인생이란


이런 경향이 미술이나 예술뿐일까. 예술이란 결국 인간의 삶과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들어온 예술은 자유로운 을 추구하는, 바람처럼 가벼운 인생을 말하는 것 같다. 특히 MZ세대로 대표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선 이런 모습을 자주 본다. 지난 7월 초 동해안 여행 도중 양양 서퍼비치에서 본 자유로운 영혼들은 내게 강렬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새로운 변화에 거침없이 도전하며 자신의 일상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가벼운 인생이라?

내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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