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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Oct 11. 2023

말 없는 청춘, 거침없는 장년

점심은 구내식당, 저녁은 편의점, 주말엔 특급호텔 뷔페...

최근 젊은이들의 풍속도라고 한다.

평소에는 실속파로 조용히 살아가지만, 때로는 과감히 플렉스하는(지르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 대학에서 강의할 때면 수업 시간이 조용하다.

질문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리액션(반응)이 드물어 혼자 허공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 같다.

용무가 있는 학생들은 대개 수업 후에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따로 톡이나 이메일을 통해 문의한다.   

   

이런 경향은 이미 어느 정도 트렌드가 됐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더 심해졌다고 한다.

비대면에 익숙해져서 대면 상황이나 직접 전화 통화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말 없는 젊은 세대가 이해가 간다.

특히 예전에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코로나 블루' 현상이 떠오른다.

보건복지부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기준 코로나를 거치면서 우울감을 느끼는 위험군이 6배나 늘었다고 한다.      



시니어 세대의 거침없는 질주


근데 내가 학생으로 참여하는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의 강좌는 180도 딴판이다.

시니어 세대가 다수인 수강생들은 언제든 거침이 없다.

평소에 입이 근질근질한지 마이크를 잡으면 도통 놓으려 하지 않는다.

옆 사람이나 수업 진행은 안중에 없는 듯 자기도취에 빠진 뻔뻔한 사람들도 보인다.

강사가 적절히 제지하지 않으면 수업이 샛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강의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예리한 견제구가 날아들기도 한다.

지난봄 미술 강의 도중에 느닷없이 파고든 질문이 기억난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를 주로 설명하시는데, 오늘 주제인 현대미술은 언제 하시는 건가요?”     

왕년에 한가락하던 사람인지 만만치 않는 내공이 느껴진다.


요즘 평생학습계를 주름잡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고학력자가 많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라는 격동의 역사를 헤쳐 나온 주역들이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산전수전 고생을 다했던 세대,

은퇴할 때쯤 돌아보니 청춘을 바쳐온 일들은 문득 덧없이 여겨진다.

이제부터 내 인생이 중심이다, 고 다짐한 후 좋아하는  온갖 정열을 발산하는 중이다.

취미활동과 여행, 친구 만나기, 운동, 교양강의 수강 등등.

그 ‘열심’이 지나쳐 종종 억척에, 오버에, 때론 빌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평생 현역'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한 모습이 아닐까.


  

마포 평생학습관 내 미술특화 복합문화공간인 '마포리움' 모습

  

조용한 남자의 인생 변화


나와 비슷한 세대, 때로 동료나 친구였을 그들을 보면

나의 변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젊은 시절, 나는 '조용한 남자'였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읍내 학교를 다니던 때, 같은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후광(?)과 남다른 범생이 기질에 힘입어 반장 부반장을 지냈다. 당시엔 하는 일이랄 게 별로 없었으니 그럭저럭 지나간 것 같다.   

그렇게 조용한 남자는 평범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낸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조금씩 낯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이란 어쩔 수 없이 지시나 요구를 받는 상황이 많은 법,

가끔 부서를 대표하는 일도 있어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목줄이 걸린’ 현안이 닥치면 때로 빌런이 될 각오까지 불사해야 한다.

어찌어찌해서 흘러간 30여 년의 직장생활,

흔한 말대로 ‘대과 없이’ 마쳤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평생학습관에서 흥미로운 강의를 들을 때마다 내 자리는 거의 앞쪽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 열심 모드여서 맨 앞에 앉지 않으면 집중이 안된다고 한다.

질문을 하거나 강사에게 답변하는 것도 제법 열성파가 됐다.

나는 어느새 세상에 스며들 듯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수업에서는 남자 수강생이 나 혼자인 경우도 있다.

학창 시절이나 직장생활 초기엔 어딜 가나 남초였는데 요즘엔 여성들이 넘친다.

평일 오후 2시에 하는 동네 필라테스는 3월부터 시작해 8개월째 ‘나 혼자 남자’로 잘 버티고 있다.

10월에 시작한 '시(詩)' 공부도 15명 정원에 ‘나 혼자 남자’다.

이제 낯가릴 일도 없어 첫 시간부터 질문을 했다.


고독을 느끼며 혼자 카공하는 것도 좋다. 오늘도 해피 데이 



브라보 유어 라이프


살다 보면 누구나 각자의 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나 시대에 따라 풍속도 달라진다.

지금 말이 없는 젊은이도 나이가 들면, 현재의 나처럼 적당히 뻔뻔해질까, 궁금해진다.


그들 인생의 가치가 통장 잔고는 아닐 것이다.

자신을 쿨하게 플렉스하는 젊은 세대의 문화와 트렌드를 보며,

새롭고 다른 방식이 만들어내는 그들 찐 인생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세상의 변화와 가능성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부모보다 가난하다는 첫 세대,

유례없이 힘겨운 그들의 인생을 응원한다.



젊은이들의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가본 홍대 앞 거리의 버스킹 모습 (*표지 사진도 홍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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