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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Dec 20. 2023

너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

최근에 영화 <서울의 봄>과 <나폴레옹>을 연달아 봤다.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서울의 봄>은 현란한 속도감 속에서 9시간에 걸친 군부 쿠데타를 조명한다. 게임이나 스포츠 라이브 같이 시종 생생하고 긴박감이 흐른다. <나폴레옹>은 영웅보다는 결핍과 불안에 사로잡힌 인간 나폴레옹에 초점을 맞춘다. 조세핀과의 관계와 권력의 부침을 유장하게 그린다.      


영화를 관통하는 비슷한 메시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욕망이다. 시대적 배경도 대통령 암살 후 계엄령 치하와 프랑스혁명 이후 혼란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주역 또한 공교롭게도 모두 군인. 그들은 은밀한 욕망에 불길을 지펴 권력을 향한 치밀한 야망으로 키워간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외치며 권력을 찬탈하고 사유화한다. 그들의 욕망은 파괴적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이 넘친다. 눈만 뜨면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 주변에 넘쳐난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의 근원이고 에너지이며 우리 사회를 만드는 궁극적인 힘이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이 사라지면 인간은 삶의 의욕과 희망을 잃는 법이다. 국가와 문명의 성쇠 또한 마찬가지다.


얼마 전 소통 전문가인 스타강사 한 분이 알츠하이머 의심 증상을 고백해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는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라면서, 자신의 최근 상태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신이 지치고 피로한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의욕이 줄어들면 활력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애국 vs. 국뽕


문화판에서도 이런 상황이나 사례를 자주 본다. 문화야말로 욕망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K컬처 또한 욕망이 만나고 교차하는 공간이다. 한국적인 것, '한국성(韓國性)'의 본질과 지향이 세계적인 것, '세계성(世界性)'의 그것과 만나 균형점을 찾아나가며 공감과 호응을 얻은 것이 바로 K컬처, K콘텐츠다.


가끔은 부정적인 이슈도 불거진다. 이른바 국뽕의 문제다. 애국이 배타적인 감정으로 비화하면 국뽕이 되고 국가 간에 갈등과 대립을 일으키게 된다. 과거 제국주의에서 보듯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게 외국(인) 차별과 비하 문제다. 영화 <범죄도시>나 드라마 <수리남>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K컬처가 가야 할 방향을 곱씹어보게 하는 대목이다. 내 욕망이 중요하듯이 타인의 욕망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상호 이해와 존중,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아쉽다.



욕망을 대하는 방법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 시대에 욕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경계하고 통제할 것이냐, 인정하고 솔직해질 것이냐. 외면하고 억누르는 게 좋은 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정직해지려면 욕망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주의 깊게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떤 욕망인지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욕망에도 색깔과 종류가 다양하니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욕망이냐,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이냐를 가리는 것. 나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지, 해롭게 하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욕망을 직시하되, 적당한 거리 두기와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나 자신과 세상을 한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는 절제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조용한 도서관이나 카페에 가면 자신의 마음 상태가 잘 보이는 것 같다(마포 평생학습관 내부).




내 인생을 만든 욕망의 정체


나로 돌아와 보자.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인정과 성장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나는 끊임없이 인정을 갈망했던 것 같다. 애써 아닌 척 해도 알고 보면 나를 끌어당기는 강렬한 힘이었다. 인정은 사랑과 관심의 다른 이름,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가도 여전히 허기가 느껴진다.  


나는 배움과 성장의 욕망이 강했다. 인생의 성숙도는 늦은 편이지만, 뭔가를 배우는 데는 열심이었다. 보이지 않는 좌표 같은 게 있었을까. 석사과정을 두 번 이수하고 40대 후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학생들을 만나는 일도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배움이 습관인 듯 은퇴 이후에도 발길은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으로 꾸준히 이어진다. 필라테스 강습도 '나 혼자 남자'로 10개월째 버티는 중이다.


이런 욕망은 날마다 새로운 나를 꿈꾸게 한다. 일상 속에서 조금은 다른 나, 새로운 나, 가끔은 재미있고 엉뚱한 나를 상상한다. 일상과 삶을 풍부하게 하는 뭔가를 꿈꾸는 일은 내게 늘 즐거움과 활력을 준다. 어떤 지위나 경제적 보상보다 갈수록 삶의 여유와 충만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욕망은 아주 중요하다. 나의 욕망을 쉽게 양보하지 못하는 이유다. 세상을 밝고 활기차게 움직이는 이롭고 창조적인 욕망이 구석구석 넘치기를 기원한다.

  


새롭고 맛있는 음식은 일상에 활기를 준다(아침 식탁에 오른 홍시 샐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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